나태주 시인이 말한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인 11월이다. 법륜 스님은 '잘 늙음'이 청춘보다 좋을 수 있는 이유를 단풍에 빗대어 말했다. "꽃은 떨어지면 지저분하게 변색되지만 단풍은 길을 융단같이 덮습니다. 책갈피에 넣어 쓸 수도 있고요."
단풍은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르는 해충에 대한 나무의 경고라고 한다. 진딧물 같은 곤충을 향해 겨울을 나야 하는 자신의 서러움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몸에 있는 것을 전부 떨구고, 색 전체를 바꾸는 행위에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것일 게다. 그러므로 또렷한 가을빛을 내는 나무는 주위의 그 어떤 나무보다 더 건강한 것이다. 나무의 겨울나기는 먹을 것을 극한까지 비축해 견디는 동물의 그것과 정반대로 이루어진다. 즉 축적은 나무의 생존 방식이 아닌 것이다. 나무는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버리는 것으로 혹독한 겨울 준비를 마친다.
단풍을 노년에 비유하면 생각이 더 풍성해진다. 가령 나이가 들수록 잔소리가 많아지는 건 경험이라는 빅데이터가 쌓여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야 잘될 것이고, 저렇게 하면 망할 것이라는 그 나름의 데이터 말이다. 하지만 들을 귀가 없는 사람에게 하는 말들은 잔소리일 뿐이다. 이걸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끝까지 경청하는 것이 어렵고, 중간에 말을 자르거나 자주 노여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가을 단풍을 보며 아름다움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걸 기억하는 것도 좋은 공부다. 비우고 덜어내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가을 숲길을 걸으며 이제부터라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으로 자신을 온건히 지키는 나무의 지혜를 실천해보고 싶다.
"겨울은 추워서 좋고, 여름은 더워서 좋습니다. 둘 다 좋아해요." 스님 말씀을 듣다가 이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면 얼마나 풍요로울까 싶다. 봄이 좋은 건 꽃이 피어 서고, 가을이 좋은 건 단풍 때문이다.
천국은 따분하다는 말을 들으면, 귀찮고 힘든 일상이 짓누르는 어려움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최근에 간신히 기억하고 있는 좋은 기도 문장 하나 공유한다. "기복이나 행운을 빌기보다는 감사해하며 살고 싶어요. 대박을 원하기 보다 자족, 가진 것에 만족해하며 살고 싶어요. 기적보다는 일상에 더 치중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가을 단풍이 서로 부러워하지 않으면서 뽐내는 것처럼, 기복보다는 감사, 대박보다는 자족, 기적보다는 일상에 충실한 삶을 살자는 것이다. "그러니 대책 없이 건드린 죄/네가 다 책임져라!" 네 속도 너처럼 붉다.
단풍/박숙이
그가 물었다
나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오랜 고심 끝에 나는 대답했다
마음에 담아본 적이 없다고
그랬더니, 며칠 만에 쓸쓸히 찾아온 그
짐승처럼 저돌적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어쨌든 속수무책으로 서로의 본능을 다 태웠다
아 나의 저항이 오히려
그의 태도를 확실히 불붙도록 만든 셈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대책 없이 건드린 죄여
네가 다 책임져라!
박한표(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