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한가운데 정박해 있는 검역선박에 오르려면 팔의 힘이 많이 필요합니다. 20m 되는 높이를 줄사다리에 의존해 올라가야 하니 위험하죠. 모두 일반 행정고시 보고 온 직원들이라 성별 구분 없이 검역현장에 나가긴 하지만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제 마음이 다 아픕니다.”
지난 25일 오전 11시 부산 중구 충장대로 국립부산검역소에서 세관 감시정을 타고 검역선박으로 이동하던 중 박기준 질병관리본부 검역지원과 과장은 이같이 말했다. 검역을 기다리고 있는 4만톤급 산물선(벌크선)을 보자 그의 고충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아 저 배에 언제 올라타나.’
이날 기자가 찾은 곳은 국립부산검역소 해상검역 현장이었다.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배는 육지에 닿기 전 바다 위에 정박해 검역조사를 받아야 한다. 나포선도 예외는 아니다. 검역 대상 배는 황색 깃발 또는 황색 전조등을 켜고 대기해야 한다. 이때 검역관들은 구명조끼와 안전모 등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세관 감시정을 이용해 검역선박으로 이동한다. 이번 대상은 일본에서 온 필리핀 선박(TINA IV)으로, 부산 남외항 해상정박지 ‘N-5’에서 검역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동거리만 해도 왕복 40분이 넘는 거리였다.
배가 정박해 있는 장소에 도착하면 감시정에서 검역대상 선박으로 갈아 타야한다. 해수면에서 갑판까지 높이가 20m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보통은 나무로 된 줄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려야 한다. 다행히 이날은 주유선도 함께 정박해 있어 선박 옆면의 철제 계단을 이용해 오를 수 있었다. 줄사다리보다는 나았겠지만 이마저도 파도가 높아질 때를 맞춰 올라타야 했고, 또 파도가 칠 때마다 배가 움직였기 때문에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검역관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실제 검역관들도 2인이 한 조가 되어 검역을 실시한다.
김인기 국립부산검역소 소장은 “줄사다리 높이가 보통 20m 내외다. 사실 떨어지면 구하기 힘들다. 배와 배 사이로 떨어지면 배 밑으로 빨려 들어가기 때문에 시체를 찾기도 힘들다. 여기서는 아마 일본에서 (시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실제 사망사례도 있기 때문에 파도가 많이 치는 날에는 검역을 나가지 않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밤에는 어쩔 수 없이 나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배에는 선장을 포함해 19명의 필리핀 선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절차는 이렇다. 선장실에서 선박보건상태신고서, 승무원명부, 건강상태질문서, 항해일지, 선박위생관리증명서를 확인하고, 선원 전부를 불러 건강상태질문서 확인 및 개인별 체온측정을 실시한다. 발열 등 감염병 증상이 있다면 검역관과 함께 육지로 이동해 격리 조치되어 치료를 받는다. 접촉자 격리 차원에서 배도 움직이지 못한다. 이날 선원들의 건강상태는 양호했다.
이어 주방과 식품보관창고, 화장실, 의무실, 의약품창고 등을 점검했다. 식품보관 및 조리실 청결상태, 식품‧의약품 유통기한, 바퀴벌레나 쥐 같은 감염병 매개체 여부 등을 확인하고, 도마와 세면대, 변기 등에서 환경 검체를 채취했다. 질병을 일으킬만한 균이 검출되면 자체 소독을 명령한다.
선원의 건강상태와 선박위생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확인돼 검역관은 선장에게 ‘검역증’을 발급했다. 모든 의사소통은 영어로 진행됐다.
강태호 검역관은 “대부분의 감염병은 발열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체온을 우선 확인한다. 검역감염병 비오염국에서 오는 배는 이러한 과정이 생략되지만 검역감염병이 국내에 번질 우려가 있다고 인정된 배는 승선검역이 이뤄진다”며 “보통 하루에 두 척 정도 승선해 검역을 실시하는데 감염병 유행시기에는 4척 정도 실시한다. 비오염국에서 온 배라고 할지라도 보건위생관리 차원에서 랜덤으로 조사를 한다”고 말했다.
선박에 대한 검역은 전자검역과 승선검역으로 이뤄진다. 전자검역은 검역감염병 비오염지역 선박이 대상이다. 선박 선장이 검역장소 도착 전 전자검역 신청서를 질병보건 통합관리시스템에 제출하면 검역관이 승선검역 해당 여부, 외항선 입항 통보서 및 전자검역 신청서 등 제출 정보를 확인한다. 승선검역은 검역감염병 오염지역에서 왔거나 검역감염병 환자 및 사망자가 있는 선박, 감염병 매개체가 서식하고 있거나 서식한 흔적이 있는 선박, 국제보건규칙에 따라 작성된 선박위생관리 증명서나 선박위생관리 면제증명서를 소지하지 않은 선박, 또는 그 유효기간(6개월)이 지나 입항한 선박 등이 대상이 된다. 검역감염병은 콜레라, 페스트, 황열, 메르스, 폴리오, 에볼라바이러스 등 7종이다.
검역을 마치고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 험난했다. 갑자기 안 좋아진 해상 날씨 탓에 파도가 거칠어지면서 배가 크게 흔들렸고, 검역관을 포함해 감시정에 탑승한 인원들은 제대로 서 있지도 앉아있지도 못했다.
선박 검역관들은 상해 위험도가 높다. 최전선에서 해외에서 온 감염병을 맞닥뜨리고, 검역 과정도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다. 자칫 발이라도 헛디디면 큰 사고로 이어지고, 불법어업 등으로 붙잡힌 나포선에도 아무런 보호장구 없이 올라야 한다. 그런데 부산검역소 기준 검역관 1인당 검역량은 358건(2016~2019년 10월 기준)에 달한다. 그나마 목포나 여수 등 다른 국립검역소에 비해 사정이 나아 51명의 검역관이 근무하고 있지만 매년 2만여척의 배를 검역하기에는 업무 강도 대비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검역관 대부분이 일반 공무원이기 때문에 체력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박기준 과장은 “보건직 공무원은 채용되면 무조건 검역소에서 2년간 근무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어렵게 공부해서 온 인력들이 힘든 검역을 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이다”라며 “특히 승선검역은 팔심이 없으면 안 되고 어느 정도의 체력이 요구되는데, 인력이 적어 성별에 관계없이 배에 올라야 하니 더 마음이 아프다”고 호소했다.
이에 박능후 복지부 장관도 “검역소 인력은 체력검정 등 소방, 경찰직 공무원처럼 시험 외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