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5일 후인 작년 9월 1일 대한의사협회 부설 의료정책연구소의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이 한경닷컴 기사 내용을 인용해 제작된 카드뉴스가 게재되었다. 이 카드뉴스에는 340명이 ‘좋아요’ 반응을 했고, 477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러나 이 카드뉴스는 전교 1등은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는 엘리트주의 인식을 표출했다는 비난과 함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관련 패러디(parody)까지 쏟아져 나오자 의료정책연구소는 다음날인 9월 2일 카드뉴스를 삭제했다.
한경닷컴은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절차 진행 중 사과와 함께 기사를 삭제해 달라는 필자의 제안을 수용해 작년 12월 18일 조정절차를 중단하고 기사를 삭제했다. 문제가 된 한경닷컴 기사와 의료정책연구소 카드뉴스는 현재 모두 삭제되었고, 이에 따라 약 900여개의 댓글도 모두 삭제된 상태다. 댓글들 중에는 필자나 환자·환자단체를 비난하거나 모욕 또는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서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댓글이 모두 삭제된 마당에 법적 대응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하고 중단하였다. 악플이나 모욕 또는 명예를 훼손하는 글이 생겨난 그 원죄는 사실(fact)에 근거하지 않은 기사를 보도한 한경닷컴과 카드뉴스를 발행한 의료정책연구소에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2018년 12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바람직한 공공보건의료 인력양성 방안 정책 토론회”에서 “반드시 수능 1등급만 가는 공공의대가 안됐으면 좋겠다”, “공공의대에서 지역사회 필수의료를 담당할 헌신적인 의료 인력이 양성되기 위해서는 성적으로만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료에 관한 관심도 함께 보아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하였다. 이를 한경닷컴에서 사실(fact)과 다르게 보도했고, 의료정책연구소가 이를 다시 인용해 카드뉴스를 발행했다.
특히, 의료정책연구소의 카드뉴스에서는 “공공의대는 반드시 수능 1등급만 가는 의대가 안 됐으면 좋겠고 지역의사 필수의료에 헌신할 마인드가 있는 학생을 선발하면 좋겠다."는 필자의 발언을 수능 성적이 한참 모자라는 실력 없는 학생도 선발해야 한다는 의미로 왜곡·과장했다. 또한 ‘환자단체연합회’를 ‘시민사회단체’의 예시로 언급하면서 공공의대 선발 시 ‘현대판 음서제’ 특혜를 받는 것처럼 오해하도록 묘사하기도 했다.
이는 환자단체연합회와 대표로 재직 중인 필자에 대해 편견을 조장하고 공분을 자아내 의사 집단휴진에 대한 여론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전형적인 ‘프로파간다(propaganda)’이고, 사람이나 단체에 부정적인 꼬리표를 붙여 대상에 일탈적 의미를 부여하는 ‘레이블링(labeling)’ 전략이다. 의료정책연구소 카드뉴스는 하루 만에 의료정책연구소가 스스로 삭제했지만 관련 패러디들이 쏟아져 나와 그 상흔(傷痕)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의료정책연구소가 대한의사협회의 부설기관이지만 의사들이 내는 회비로 운영되는 의료정책 학술단체다. 학술단체인 점을 고려할 때 의사 집단휴진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자극적인 내용의 대국민용 카드뉴스를 제작하는 것이 적절한지도 의문이지만 관련 내용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사과한 후 카드뉴스를 삭제하는 등 일련의 과정은 실망스럽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작년부터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와 ‘의정협의체’를 운영하고 있고, 시민단체·소비자단체·환자단체·노동단체와 ‘이용자중심의료혁신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안정화되면 앞으로 이 두 개 협의체에서 의사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관련한 사회적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정책연구소는 정부의 의사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정책 추진과 관련해 비신사적인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적어도 근거에 기반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수립해내는 학술단체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안기종은 한국백혈병환우회와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환자운동가이다. 《환자샤우팅》은 안기종 대표가 환자들의 생생한 의료현장 이야기와 목소리를 전달하는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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