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신민경 기자 =녹음이 가득한 산으로 둘러쌓인 경기도 양평군 다대리.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투명한 시냇물 언덕 너머엔 한국표 수제맥주를 만드는 ‘세븐브로이’ 양평 양조장이 자리를 잡았다. 수제맥주 회사에서 보기 드문 120kl(킬로리터) 생산 설비를 갖춘 양조실에서 김희상 세븐브로이 브루마스터(마스터)는 출고 준비 중인 ‘곰표맥주’를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마스터란 소규모 맥주 양조장에서 맥주 제조의 전 공정을 관리하는 양조 기술자를 말한다. 곰표맥주는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 밀가루 업체 ‘곰표’, 수제맥주 제조사 세븐브로이가 손잡고 개발한 수제맥주다. 곰표맥주의 고소한 밀향과 은은한 복숭아향은 김 마스터의 손에서 탄생했다.
지난 9일 세븐브로이 양평 양조장에서 만난 김 마스터는 수제맥주 외길 15년만에 찾아온 대중적인 인기에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며 소회를 밝혔다.
김 마스터는 수제맥주 흥행의 선봉장에 선 인물이다. 수제맥주 업계 최초로 자동화 서비스를 도입해 편의점, 마트 등 유통가 수제맥주 전파에 한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제맥주 자동화 시설 구축을 배우기 위해 많은 후배들이 세븐브로이 브루어리를 자주 찾는다고 설명한 그는 “대기업의 맥주 공정은 한 가지 맥주를 많이 뽑아낼 수 있는 유틸리티를 이루고 있지만 다양한 맥주를 소량 만들어야 하는 수제맥주는 다르다”면서 “이산화탄소, 물, 공기 등의 수제맥주에 최적화된 자동화 유틸리티 구성 방법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수제맥주 인생은 ‘애주’에서 시작한다. 15년 전 자타공인 애주가였다고 자신을 소개한 김 마스터는 처음 수제맥주를 손에 잡았던 당시를 회상했다.
30대 초반 김 마스터는 교수의 꿈을 안고 학업에 열중하던 학생이었다. 학업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지인들과 술자리를 갖는 게 그의 낙이었다. 공부와 스트레스의 일상이 반복되던 중 2002년 그의 인생을 바꿀 소식이 귀에 들려왔다. 주세법이 개정되면서 수제맥주 유통이 가능해진 것. 당시 눈이 번뜩였다는 김 마스터는 수제맥주 업계에서 성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15년 전을 기억했다.
“술 분야에서는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죠. 체코 출신 수제맥주 마스터가 국내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손에 잡고 있던 공부를 제쳐놓고 무작정 찾아갔어요. 수제맥주 업계는 대부분 도제식 교육으로 기술을 배워요. 그날부터 브루어리에서 낱알을 나르기 시작했죠.”
적지 않은 나이로 수제맥주 길에 들어선 그는 성공이 절실했다. 본인보다 어린 후배들의 잔심부름과 핀잔도 꿋꿋하게 견뎌낼 만큼 말이다.
“20대 초반에 수제맥주를 배우러 들어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에 비하면 저는 많은 나이었죠. 저보다 나이 어린 선배들도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나이가 뭐 대순가요? 선배들의 노하우를 하나라도 더 배우는 게 소중했어요. 그게 곧 경쟁력이니까요. 선배들을 틈틈이 살펴보면서 하나라도 더 눈에 담으려고 아등바등했어요.”
수제맥주 업계에 들어선 지 4년이 채 안 될때였다. 그는 마스터 자리에 올랐다. 비결은 남다른 ‘부지런함’이었다. 오전 5시에 맥주를 만들기 시작하려면 집에서는 3~4시엔 일어났어야 했다는 그는 출퇴근 시간을 아끼려 양조장에서 웅크려 잠을 청한 적이 수두룩했다고 말했다. “더 자주 맥주를 들여다 보고 맛본 덕분에 실력을 쌓을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고 그는 덧붙였다.
다만 성공은 맥주 맛을 내는 재능과 길이 달랐다. 새롭지만 대중적이지 않은 맛에 개발한 수제맥주가 인기를 끌기엔 역부족이었다고. 김 마스터는 “맛있다고 자신하면서 개발했던 수제맥주 중에서 성공했던 메뉴는 단 하나도 없었다”며 “대중적이지 않은 맛에 항상 외면받기 일쑤였다”고 토로했다. 15년 수제맥주 인생 중 10년은 소비자 무관심의 연속이었다고 그는 부연했다.
첫 성공작은 강서, 달서 등 지역 명칭을 딴 에일맥주였다. 한국 맥주 시장은 라거 맥주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소규모 수제맥주 시장에서 에일 맥주가 블루오션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김 마스터는 내다봤다. 그는 한국인이 애정하는 식음료에 파인애플, 복숭아 등 과일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후 과일향이 나는 에일 맥주 개발에 나섰는데, 예견은 적중했다. 에일이라는 새로운 맛과 한국 지역을 딴 제품명은 ‘한국이 만들어 낸 맛있는 맥주’라는 눈도장을 찍는 데에 성공적이었다고 김 브루 마스터는 평가했다. 2017년 청와대 '호프미팅' 행사에서는 세븐브로이 강서 맥주가 채택되기도 했다.
맛은 대기업에게도 인정 받았다. 밀가루 업체 곰표에게서 곰표맥주를 함께 만들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곰표맥주 제조 제안을 먼저 받았어요. 수제맥주 업계에서는 제일 맛을 잘 내는 곳으로 들었다면서 연락을 받았죠. 인정을 받은 것 같아 수제맥주 인생 중 가장 뿌듯했던 순간으로 기억에 남아요.”
마스터에게 공부는 숙명이다. 수제맥주는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한다는 특징이 있다며 적시에 소비자 입맛 트렌드를 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지금도 다양한 원재료와 효모를 연구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는 김 마스터는 새로운 학습이 없으면 수제맥주 업계에서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힘줘 말했다.
수제맥주가 흥행 가속페달을 밟고 있지만 최근 김 마스터에게는 고민이 생겼다. 수제맥주 업계를 위협하는 대기업 때문이다. 그는 “수제맥주를 만드는 작은 브루어리 활성화를 위해 2002년 주세법이 바뀌었지만 최근 수제맥주가 인기를 받으면서 대기업의 수제맥주 진출이 잦아졌다”며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대기업 수제맥주 진출이 많아지면 기존 소규모 수제맥주 기업들이 위축되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김 마스터는 “대기업 생산 능력에 작은 업체들이 당할 재간이 있겠느냐”며 “한국형 수제맥주 업계 특성이 무너질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김 마스터는 업계 지킴이를 자처했다. 그는 “수제맥주는 트렌드를 빨리 반영한다는 특징이 있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맞는 맛을 겨냥한 맥주 개발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이라며 “맛이 곧 경쟁력이다. 맛있는 수제맥주를 더 많이 개발하고 소비자를 찾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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