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이하 일산병원)이 대한민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 정립’이라는 난제를 풀기 위해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지를 몸소 보여준다. 효율적인 감염병 관리 모델도 내놨다. 일산병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소속기관이다.
찾아온 환자에게 “다른 병원 가실래요?”… 의료전달체계 개선 목적
‘의료전달체계’는 경증환자는 의원에서, 중증환자는 종합병원에서 치료받도록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부족한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환자들이 적정한 서비스를 형평성 있게 제공받기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의료전달체계 정립은 아직까지 풀지 못한 숙제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대형병원에 환자가 더 몰리고 있다.
지난 12일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일산병원에서 만난 태은숙 진료협력부장도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일산병원에도 매일 3000명이 넘는 외래환자가 온다”면서 “고객(환자)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일산병원은 중증환자를 치료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경증환자가 너무 많아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종합병원인 일산병원은 중증환자를 적기에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하고, 급성기 치료가 종료된 경증 만성질환자는 동네의원에서 지속적이고 포괄적 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산병원은 병원만의 진료의뢰·회송 시스템인 ‘I-PARtNER’를 운영하고 있다. 태 부장은 “다른 큰 병원에도 진료협력센터는 있지만, 일산병원은 ‘회송할 진단명 결정→병원 간 CP 개발→지역사회 병원 간 MOU 체결’이라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게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중에서도 진료의뢰·회송에 ‘표준진료지침(Critical Pathway, CP)’을 접목한 것은 일산병원이 처음이라고 했다. 일산병원은 지난해 고혈압, 고지혈증 환자 회송에 필요한 CP를 개발·적용했고, 올해는 위-식도역류병 회송 CP를 추가로 개발했다.
즉, 일산병원은 내원환자 중 고혈압·고지혈증·위식도역류병 환자를 동네의원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여기에 동의해 돌아간 환자가 동네의원에서도 일산병원에서와 같은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질병별로 표준적인 진료 방법과 절차를 적어 놓은 안내서(CP)를 개발해 공유하고 있다. 현재 74개 의료기관이 I-PARtNER에 참여하고 있는데, 일산병원은 이 숫자를 꾸준히 늘려나갈 계획이다. 한편, 2018년 320건이었던 일산병원의 진료회송건수는 I-PARtNER가 중점 추진된 지난해 2695건으로 늘었다.
태 부장은 “충성고객이 될 수도 있는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 병원이든 선뜻 하기는 힘든 사업”이라면서도 “하지만 의료전달체계 효율화를 위해 일산병원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병원 내 감염병 환자 관리는 ‘스마트’하게
일산병원에서 눈길을 끄는 건 의료전달체계 개선 노력만이 아니다.
같은날 만난 박민현 스마트병원혁신부장은 “만약 일산병원 안에서 감염병 환자가 발생한다면, 그 환자가 누구랑 접촉했는지 신속하게 알 수 있다”고 했다.
의료진을 포함한 일산병원 직원들의 목걸이형 사원증에는 본인 동의하에 비콘(Beacon)이 달려있다. 비콘은 위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신호를 주기적으로 전송하는 기기를 말한다. 의료진뿐만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에도 붙어있다. 이 비콘은 병원 전체(지하2층~지상13층)에 설치된 900여개 감지기에 동선과 위치를 알려준다. 이로 인해 감염병 환자가 발생할 경우 병원 내 동선과 밀접접촉자, 격리대상자를 짧은 시간에 정확히 찾아낼 수 있다.
확진자·밀접접촉자·격리대상자 파악뿐만이 아니다. 일산병원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반지 및 체온계 패치)를 활용해 확진자의 상태 변화를 신속하게 확인한다.
박 부장은 “반지를 착용하고 있으면 혈압이나 산소포화도 정보가 자동으로 수집된다. 체온계 패치에도 정보 송신 기능이 있다”면서 “이러한 선제적 관리를 통해 중증 환자로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시스템들이 일산병원 안에서만 존재할 게 아니라, 파급·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승헌 기자 ss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