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만에 전주행…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만났더니 [쿠키인터뷰]

21년 만에 전주행…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만났더니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2-05-04 18:53:48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기생충’과 ‘드라이브 마이 카’로 칸 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2년 연속 수상 행진을 이어간 봉준호 감독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두 사람이 지난해 10월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나 찾은 공통점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팬클럽 회장을 두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다퉈야 할 것”이라고 농담했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에게 대학원에서 영화를 배운 기억을 끄집어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선 연상호 감독이 25년 전 영화 ‘큐어’(감독 구로사와 기요시)를 자신의 프로그래밍 섹션에 초청하며 존경을 드러냈다. 동시대 가장 유망한 젊은 아시아 감독들이 앞다퉈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팬을 자처하는 모양새다.

1일 오전 전북 전주시 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 이후 21년 만에 영화제를 찾았다. 그는 “당시엔 작은 규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라며 “이번에 굉장히 많은 프로그램과 영화를 상영하는 걸 보고 크게 성장했다고 느꼈다”며 방문 소감을 전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에게 영화 ‘큐어’에 관한 이야기, 자신의 작품세계 및 정체성, 봉준호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이야기를 들어봤다.

“진짜 공포는 정체를 모르는 것”

평소 호러 장르를 좋아하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기회가 되면 호러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영화가 바로 ‘큐어’다. ‘큐어’는 봉준호 감독이 영화 ‘살인의 추억’을 준비하며 범인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데 도움을 준 영화이기도 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정체를 알면 무서워도 대항할 수 있고 해결책도 찾을 수 있다”며 “이 공포가 뭔지, 어디까지 가는지 잘 모르겠는 것이 공포의 근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포 중에 가장 알기 쉬운 건 죽음”라고 말했다. ‘큐어’ 외에 다른 작품에도 비슷한 공포의 느낌을 심었다. 구로사와 감독은 또 “처음부터 무엇인지 모르는 걸 목표로 만든 것도 있지만, 이렇게 하면 뭔지 알겠지 하고 쉽게 표현했어도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온 영화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중극장에서 '봉준호X하마구치 류스케 스페셜 대담'이 열렸다.   사진=박효상 기자

“봉준호는 바뀌지 않았구나”

봉준호 감독 얘기를 꺼내자,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자신도 봉 감독의 굉장한 팬이라고 밝혔다.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봉 감독을 처음 알았고, ‘괴물’을 보고 어떻게 저런 영화에 도전했을까 놀랐다. 최근작인 ‘기생충’을 보기 전엔 걱정이 앞섰다. 미국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과거 넷플릭스와 작업한 봉감독이 아카데미에 맞는 작품을 만든 건 아닌가 염려했다. 하지만 정작 영화를 보니 아카데미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오히려 봉 감독이 기존 하던 작업의 연장선이었다. 구로사와 감독은 “어떻게 이 영화로 상을 받았는지 의문스러웠을 정도”였다며 “그동안 해온 것과 달라지지 않은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 상을 받은 게 기뻤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도 그대로 갈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봉준호 감독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자신에게 영향받았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15년 전 하마구치 감독이 학생일 때 몇 가지 충고한 일을 예로 들었다. 작품을 보고 훌륭하다는 평가와 함께 대사나 인물 움직임이 너무 많다는 충고를 했지만, 다음 작품에서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그 다음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하마구치는 자신만의 방식을 계속 밀고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나의 영향은 없었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오직 완벽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구로사와 감독은 스스로를 예술가도, 작가도 아닌 장인으로 규정했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답고 잘 정리된 완벽한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라며 “그것이 내 가장 강한 욕구이기 때문에 난 장인 장르에 들어가는 사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영화를 가장 많이 봤던 시기인 1970년대 영화들이 목표다. 지금도 당시 받은 영화의 느낌을 구현하려고 저예산으로 영화 만들지만, 완벽한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구로사와 감독은 “영화를 통해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며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70년대의 영화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이 목표다. 배우, 스태프와 오직 완벽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다”고 말했다.
 
영화 ‘스파이의 아내’ 스틸컷

“일본이 침략한 전쟁 그린 영화, 아직 투자 적어”

지난해 개봉한 영화 ‘스파이의 아내’(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는 태평양 전쟁 직전인 1940년대 일본 고베를 배경으로 해 주목받았다. 일본에서 전쟁은 대부분 공습을 받는 등 피해자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을 그린 영화가 일본에서 제작되는 건 드문 일이다. 투자도 잘되지 않아 NHK와 함께 매우 적은 예산으로 세트를 활용해 찍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피해자 입장의 일본도 슬픈 얘기가 많고 이 얘기도 틀리진 않는다”라며 “가해자 입장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해왔는지를 다루는 건 금기까진 아니어도 투자가 잘 안 된다. 실험적인 도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돌아봤다.

“OTT는 좋은 시스템”

‘스파이의 아내’처럼 애플TV+ ‘파친코’도 전쟁 가해자로서의 일본을 그린 드라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파친코’를 비롯해 유명한 OTT 작품을 아직 보지 않았다. OTT로 작품들이 서비스되는 현실을 부정적으로 보진 않는다. 오히려 좋은 시스템이라고 긍정했다. 그 역시 OTT에서 작품 제작 제안을 받고 있다. 구로사와 감독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스트리밍과 극장 상영 사이에 자율성이다. 꼭 스트리밍 전용 영화, 극장용 영화로 상영 방식을 제한해선 안 된단 얘기다. 구로사와 감독은 “휴대전화로 보는 것과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것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라며 “집에서 휴대전화로 영화를 보던 사람들도 다음날 영화관에 가서 보기도 한다. 큰 화면이든 작은 화면이든 상관없이 서로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시스템이 이상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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