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도시’ 장첸(윤계상)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영화 ‘범죄도시2’(감독 이상용)가 개봉하자 이 같은 우려는 사라졌다. 오히려 더한 놈이 나타났다. 강해상을 소개하는 ‘인간의 탈을 쓴 괴물’, ‘무자비한 악행’, ‘최강 빌런’ 등 수식어가 과장이 아니란 걸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배우 손석구가 연기한 강해상의 존재감이 영화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수많은 영화에서 마주한 악랄한 범죄자를 이런 캐릭터로도 구현할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범죄도시2’ 개봉 전인 지난 18일, 온라인 화상 인터뷰로 만난 손석구는 한국이 아니었다. 필리핀에 머물며 디즈니+ ‘카지노’를 두 달째 촬영 중이다. 촬영에 바빠 그가 출연한 JTBC ‘나의 해방일지’의 인기도, ‘범죄도시2’에 대한 기대감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 손석구는 “어느 정도 반응인지 잘 모르지만, 들뜨지 않고 늘 하던 일을 할 수 있어 좋다”며 ‘범죄도시2’ 출연을 결정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줬다.
“전부터 ‘범죄도시’의 엄청난 팬이었어요.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형사물이 나오는구나’, ‘엔터테인먼트의 극이다’라고 생각했죠. 지금도 우연히 보기 시작하면 채널이 안 돌아가는 영화예요. 한 장면, 한 장면이 다 재밌으니까요. 2019년 JTBC ‘멜로가 체질’ 방송이 끝날 때쯤 ‘범죄도시2’ 출연 제안을 받았어요. 어떤 작품은 바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어떤 작품은 고민을 많이 하거든요. ‘범죄도시2’는 꽤 고민을 많이 한 작품이에요. 일단 제가 액션을 전문적으로 해본 적도 없고, 그렇게 선호하진 않거든요. 좋아하는 영화지만 직접 연기하고 싶은 욕심이 나진 않았어요. 하지만 이상용 감독님을 만나고 마음이 바뀌었어요. 감독님이 가진 영화에 대한 열정이 정말 너무 뜨거웠거든요. 그래서 출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손석구는 “순간의 감정에 몸부터 움직이는 인물”이라고 강해상을 설명했다. 앞뒤 안 가리고 돈에 집착하는 강해상의 성향이 과거에 겪은 피해로부터 출발했을 거라 생각했다. 피해의식에서 나타나는 울분을 이해하려고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며 연구했다. 처음 시나리오와 달리, 강해상의 말수를 줄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강해상은 충동적인 인물이에요. 원래 시나리오에선 욕을 더 많이 했어요. 제가 감독님에게 말수를 줄이고 되도록 욕을 안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욕을 한 번 하면 경찰들에게 하는 게 아니라 충격적인 장면으로 만들고 싶었죠. 그래서 장면을 따로 하나 만들었어요. 도로에서 공포에 싸인 시민들에게 욕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게 거의 유일하게 강해상이 욕하는 장면이에요. 실제로 길에서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떨까 하는 충격을 안겨주고 싶었거든요.”
손석구는 자신이 연기한 강해상과 ‘나의 해방일지’ 구씨, 모두 실제 모습과 많이 다르다며 손을 저었다. 자꾸 악역 제안을 받는 이유에 대해서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눈치였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제가 아주 악랄하게 보이기도 하나 봐요. 전 저를 전혀 그렇게 안 보거든요. 악역이 나한테 어울리나 싶은데, 그렇다고 하니까 그것도 맞는 거라고 생각해요. 구씨는 굉장히 여린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은 상처도 크게 다가오는 사람이지만, 실제의 전 더 이성적이고 건조해요. 강해상은 말수도 없고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에요. 저랑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전 나이 먹으면서 말도 많아지고 재밌는 얘기하면서 웃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됐거든요. 구씨와 강해상 모두 어려운 캐릭터예요.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감독 정가영)에서 연기한 우리가 저에게 더 잘 맞아요.”
손석구는 “솔직한 연기가 좋다”고 말했다. 그래서 스스로가 누구인지 잘 알려고 하고 들뜨지 않으려고 한다. ‘나’인 게 제일 좋기 때문이다. 손석구는 프랜차이즈로 기획된 ‘범죄도시’ 시리즈에 다시 출연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설명했다.
“촬영하면서 동석이 형이 장첸하고 강해상이 같이 나와도 재밌지 않겠냐는 얘기는 했어요. 만약 둘이 싸우면 장첸이 이기지 않을까요. 강해상은 이번에 너무 심하게 맞아서 싸움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굳이 안 싸우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사실 ‘범죄도시’에 다시 출연할 마음은 없어요. 그건 ‘범죄도시’를 위해서도, 저를 위해서도 좋지 않은 선택 같아요. 강해상도 시작과 끝이 명확하게 있어야 사람들에게 더 의미를 남길 것 같아요. 장첸도 마찬가지고요. 전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