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설명할 때 어떤 얘기를 먼저 꺼내야 할까. 하나는 배우 송강호로 시작해 강동원, 이지은, 배두나까지 이어지는 출연진을 설명하는 방법, 또 하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소개하는 방법이 있다. 한 명 한 명 영향력이 큰 한국 배우들이 이렇게 한 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것도, 세계적인 일본 감독이 한국 제작사에서 제작하는 한국영화 연출을 맡는 것도 모두 드문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성사됐을까.
지난 3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느 날 A4 용지 세 장에 쓴 플롯에서 시작된 이야기"라고 ‘브로커’의 출발점을 설명했다. 처음엔 자상한 미소를 띠고 베이비박스에서 아이를 꺼내 팔아버리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 이미지의 주인공이 배우 송강호였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배우들과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언젠가 함께 영화를 하기로 약속한 송강호와 강동원, 배두나가 있었다.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를 통해 이지은과 이주영도 만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한국영화와 만나게 된 이야기, 그리고 ‘브로커’가 어떤 의미를 지닌 영화인지 들어봤다.
- ‘브로커’는 언제, 어디에서 시작된 영화인가요.
“2013년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찍으려고 자료조사를 할 때였어요. 일본 양부모 제도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죠. 구마모토 현에 아기 우편함 시설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책도 찾아보며 기획을 시작했어요. 그때 한국에도 교회가 운영하는 베이비박스가 있다는 얘길 들었어요. 일본보다 10배 넘는 아이들이 베이비박스에 버려진다는 걸 알게 돼 관심을 갖게 됐죠. 한국에서도 입양이 관심 있는 소재니까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 그 이후 이야기도 궁금해요. 처음 ‘브로커’ 각본을 쓸 때부터 한국영화로 찍으려고 했던 건가요.
“한국의 베이비박스 상황을 알게 된 직후 A4 용지 세 장에 플롯을 썼어요. 송강호 배우가 친구와 함께 베이비박스에서 아이를 꺼내서 안고 자상한 미소를 띠어요. 그렇게 아이에게 말을 건네고 팔아버리는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그 플롯에 이전부터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주고받은 배우 이름을 적었어요. 그게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였습니다. 그분들을 염두에 두고 쓴 플롯이 출발점이에요. 6~7년 전인 것 같아요.”
- ‘브로커’가 인물들을 보는 시선이 이전 작품들과 달라진 느낌도 들어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찍은 후 인터뷰에서 작품을 만든 동기에 대한 질문을 받았어요. 그때 ‘여성은 아이가 생기는 순간 어머니가 될 수 있지만, 남성인 난 아버지가 됐다는 실감을 갖지 못했다’고 답했어요. 아마 남자들은 관념적인 사고 없이는 부성을 가질 수 없는 것 아닌가 싶었고 그게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라고 답변했어요. 인터뷰 기사를 본 제 친구가 여성도 마찬가지라고 했어요. 아이가 생긴다고 바로 모성이 생기지 않는다며 남자들의 그런 편견이 모성을 갖지 못하는 여성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한 말에 대해 통렬하게 반성했어요. 앞으론 안일하게 모성이란 말을 쓰지 말고, 이 문제를 깊이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태어난 이야기가 ‘어느 가족’과 ‘브로커’예요. ‘어느 가족’에선 자기가 낳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되려고 하는 여성을 그렸고, ‘브로커’에선 두 명의 여성이 각기 다른 과정을 통해 어머니가 되는 이야기를 그리려고 했어요.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건넬 때도 아이를 팔러 가는 브로커 이야기인 동시에 어머니가 되는 이야기도 있다고 설명했어요.”
- 영화의 메시지를 후반부 소영(이지은)의 입을 빌려서 전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한국에서 취재하면서 베이비박스를 직접 찾아봤고, 변호사를 만나 입양제도를 알아봤어요.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도 만났고 양부모도 만났고요. 그 중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길 바랐나’라는 확신을 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된 보육원 출신 아이가 있었어요. 일본에서 취재할 때도 그런 목소리를 많이 접했고요. 그게 저에겐 힘들게 다가왔습니다. 어머니의 책임이 아니에요. 성인이 될 때까지 아이들에게 생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지 못한 어른의 문제이자 사회의 책임이라고 느꼈어요. 평소 영화를 보는 상대의 구체적인 얼굴을 떠올리면서 말을 걸듯이 영화를 만들어요. 이번엔 보육원 출신 아이들을 향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고레에다 감독님 영화는 주로 사회 어두운 곳에 시선을 두는데 그 이유가 있나요.
“‘어느 가족’으로 칸영화제에 갔을 때 어느 배우가 말해줬어요. ‘어느 가족’ 뿐 아니라 이번 영화제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고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볼 수 없는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는 영화들이 많았다는 말로 작품을 평가해주셨습니다. 제 영화인 ‘아무도 모른다’를 찍을 때 분명 존재하지만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는 존재들이란 뜻으로 제목을 붙였어요. 분명 그들은 존재했다는 의미를 담았죠. 그런 주인공을 영화로 다루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기 때문에 다룬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질문을 던지는 거죠. 그럼 제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오는 관객들이 ‘우리가 그동안 봤던 세상이 다를 수 있겠다’, ‘그런 세상도 존재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게 영화가 가진 가장 큰 가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감독님의 영화가 익숙하지 않은 한국 관객도 많을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들면서 한국 관객을 얼마나 의식했나요.
“의식하지 않고 평소대로 했습니다. 일본에서 영화를 찍을 때도 관객들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제가 보고 싶은 영화를 항상 만들어왔어요. 다만 이번엔 송강호 배우가 출연하는 만큼 많은 한국 관객이 보러오실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평소 만드는 영화보다 더 다양한 관객들에게 ‘브로커’가 전달되겠다는 생각은 머리에 항상 있었습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