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과 달리 많은 지원이 생겼다고 하지만 모르겠어요. 바빠서 아이 생각을 못 하겠어요”
경기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30대 남성 A씨는 결혼한 지 1년이 지났지만 ‘2세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 A씨는 22일 쿠키뉴스에 “아직 둘이 살기도 벅찬데 아이까지 생긴다고 하면 버틸 수 없을 것 같다”며 “아이를 돌볼 사람도 없고 (출산·육아) 지원도 다 달라서 알아볼 여력이 없다”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설명했다.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다”는 말은 통계로 확인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 육아휴직 사용 기간은 9개월(여성 9.6개월, 남성 7.3개월)로 전년 대비 0.5개월 감소했다.
아이가 만 1세가 될 때까지도 온전히 돌봄에만 집중할 수 없다는 의미다. A씨는 “쉬는 동안 경제적 부담도 크다”고 말했다.
지난달 27~28일 중앙일보가 여론조사 업체 에스티아이에 의뢰해 전국 20~39살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벌인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표본오차 95%에서 신뢰 수준 ±3.5%p) 응답자 중 27.4%가 ‘양육비 부담’, 20.7%가 ‘일자리 불안정’ 등 경제 문제를 출산을 감소의 원인으로 꼽았다.
지난해부터 부모 중 한 명이 육아휴직을 하면 1년간 통상임금의 80%를 받을 수 있지만 이 중 25%는 복직 후 6개월이 되는 시점에 받을 수 있다. A씨는 육아휴직 사용 대신 ‘나가서 일하자’는 인식이 강하다고 전했다.
노동시간이 긴 것도 출산 기피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행정연구원의 ‘한국과 주요 선진국 노동시간 규제 현황 비교’ 보고서를 보면 대한민국의 전체 취업자 연간 실제 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 1915시간이다.
이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1716시간보다 199시간 긴 것이다. 한국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 40시간, OECD 평균보다 3.2시간이 길다.
외국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근로시간을 단축하기도 했다. 프랑스는 일과 가정의 조화를 목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해 2002년 기준 법정 노동시간은 주 35시간, 연 1600시간으로 명시했다. 실제로 2021년 기준 프랑스는 연 1490시간 일한다.
시민들은 ‘합계출산율 0.78명’은 예정됐었다는 반응이다. 쿠키뉴스는 22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20대 미혼 여성들을 만났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취업 대행사에서 근무하는 고모씨는 “일이 많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퇴근하면 밤 10시다. 애인이 있지만 결혼 계획도, 출산 계획도 세울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지방에서 태어나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광고 대행사에 취직한 문모씨는 “서울에 올라와 보니 모두가 경쟁하고 있는 걸 깨달았다. 내 자식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육아에) 노력할 자신이 없다”고 전했다.
문씨는 ‘출산 포비아’가 청년 세대에 포진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교육 발달로 임신과 출산 후 여성의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 자세히 알게 됐다”며 “일하면서 (임신으로) 변하는 몸 상태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챙길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시간 빈곤’을 출산율 저하의 원인으로 꼽았다.
고씨는 “주 69시간제 등 일하는 시간을 늘리자는 말이 나오는데 그 전에 삶을 영위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인간다운 삶’을 살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애를 낳으라고 할 수 있나. 무책임하다”고 실효성 없는 정책을 질타했다.
아울러 문씨는 “먹고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 와중에 정부 지원을 어떻게 찾느냐”며 “생존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서 아이를 낳으면 불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럴 거면 혼자 사는 게 나을 거란 생각이 든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안소현 기자 ashrigh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