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게손 논란 부끄럽다! 넥슨은 여성 혐오 공모를 멈춰라!”
여성단체들이 넥슨의 게임 홍보 영상으로 촉발된 ‘집게손’ 논란과 관련, 일부 이용자들의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용인한 넥슨을 규탄했다.
28일 오전 11시께 열린 기자회견은 한국여성민우회 주관, △문화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여성노동조합 △청년참여연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의 주최로 판교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진행됐다.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칼부림을 예고한 글들이 온라인에 게시돼 기자회견은 경찰의 삼엄한 보호 속에 진행됐다.
앞서 일부 남성 이용자들은 넥슨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에 등장한 캐릭터가 찰나의 순간 집게손 모양의 동작을 취했다며 넥슨에 항의한 바 있다.
이들은 이른바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해당 영상을 제작한 외주업체 ‘스튜디오 뿌리’ 직원의 신상정보를 캐내고 소셜미디어 계정을 뒤져 여성 인권 지지 의사를 색출하는 등 집단행동을 벌였다.
스튜디오 뿌리 측의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스튜디오 뿌리 측은 하루 전인 27일 ‘2차 사과문’을 게시했다 돌연 삭제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2차 사과문은 지난 1차 사과문과 달리 장선영 스튜디오 뿌리 대표 명의로 게재됐다. 해당 사과문에서 장 대표는 우선 남성을 혐오하는 표현을 막지 못해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고, 이후에 ‘의도한 것이 아니다’고 해명한 것 역시 안일한 대처였다고 반성했다.
이어 해당 직원이 퇴사하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스튜디오 뿌리 소속 직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여성단체 측은 물론 어떤 곳과도 공식적인 접촉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해당 사과문은 갑자기 삭제됐고, 기자회견 시점까지도 다시 올라오지 않아 논란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장 대표가 직원 퇴사에 대해 언급하는 과정에서 소셜미디어 발언을 그대로 옮기는 바람에 당사자가 특정됐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한편 넥슨은 지난 26일 자정쯤 영상을 비공개 처리한 것을 시작으로 해당 영상의 집게손 모양이 ‘남성혐오’라는 악성 민원을 발빠르게 수용, “홍보물 제작 과정에서 세심하게 검토하지 못해 심려를 끼쳐드린 점 사과드린다”며 사과문을 게시했다.
넥슨은 이에 그치지 않고 온라인 이용자 간담회를 열어 재차 사과하고 자사 홍보 영상에서 집게손처럼 보이는 장면을 초 단위로 전면 검수하겠다는 공지도 올렸다.
게임업계와 남초 커뮤니티의 반페미니즘적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6년 넥슨은 페미니스트를 퇴출하라는 일부 소비자의 요구를 수용해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여성 성우를 교체했다.
2018년에는 연속적인 ‘사상검증 사건’이 있었으며, 2020년에는 ‘가디언테일즈 대사 수정 논란’이 있었다. 2021년 GS25 광고에서는 ‘집게손 논란’이 촉발된 바 있으며, 2023년에는 ‘프로젝트 문 여성 작가 배제 사건’이 벌어졌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30여명의 참석자들은 “기업들이 혐오세력 앞에 납작 엎드렸다”며 “집게손 모양이 남성혐오를 상징하며, ‘페미’라는 반사회적 여성 세력이 이런 상징을 사용한다는 음모론은 남초 커뮤니티가 날조해낸 허황된 착각”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화인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사무장은 “아무 의미 없는 동작을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동작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음모론에 탑승하는 게 전 세계적으로 비웃음 받을 일”이라고 넥슨을 향해 일갈했다. 이어 “악성 이용자의 어처구니 없는 요구사항을 들어줄 게 아니라 게임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지켜줄 방법을 고민했어야 했다”며 “넥슨을 포함한 게임업계가 반페미니즘적 행태를 멈추고 반성하며 속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두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활동가는 “지난 2020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부에 게임업계 내 여성 혐오 및 차별에 대해 실태조사를 하고, 결과에 따라 해당 관행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고 상기시키며, “하지만 문체부는 지난 3년간 해당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렇듯 정부는 여전히 게임업계 내 여성 혐오와 차별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수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캐릭터의 동작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손가락 움직임을 여성 캐릭터에 한정하여 비슷한 것을 어떻게든 찾아내고 이를 빌미로 관련된 여성 노동자가 ‘페미’라고 몰아가는 민원은 어떤 맥락에서 보더라도 억지”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이 문제의 책임은 무엇보다 게임업계에 있다. 게임업계에 요구되는 사회적 가치와 공적 책무에 대한 고려와 숙고가 없이 억지 민원에 곧바로 응답하면서 남성 게임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효능감을 충족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게임업계는 억지 민원 요구에 응하기보다는 노동자를 보호하고 게임의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러나 지난 8년여간 게임업계는 게임 이용자 권리를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여성 노동자를 억압해 왔고, 이 과정에서 성평등을 위한 문제 제기는 묵살해 왔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일부 남성 이용자의 ‘남성혐오’ 관련 억지 주장에 게임사가 즉각 굴복하는 사건이 반복되자, 기업을 휘두르고 여성 종사자를 괴롭히는 권능감과 재미를 위해 놀이처럼 억지 논란을 일으키는 집단도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반사회적 여성 공격 ‘놀이’가 반복되는 이유로 기업이 악성 민원을 받아주고 힘을 키워주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기자회견 직후 소수의 남성 게임 유튜버들이 참가자들에게 공격적인 질문을 던져 유튜버와 참가자들이 잠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일부 참가자가 현장을 지키고 있던 경찰을 호출하는 등 분위기가 험악해졌으나, 몇 차례 대화 이후 상황은 금세 종료됐다.
이날 발표된 ‘게임계 페미니즘 혐오몰이를 규탄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문은 온라인 상에서 반나절만에 2만5511명이 넘는 개인과 단체가 연명했다.
차종관 기자 alone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