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미 300석. 심 봉사가 덜컥 시주를 약속했을 때, 딸 심청의 마음은 어땠을까. 인당수에 뛰어들기 위해 뱃머리에 선 심청. 몸을 던지는 순간까지도 어쩌면 아버지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을까.
부모의 빚을 대신 갚는 청년은 2024년에도 존재한다. 적금을 깨 생활비를 보태고, 대출을 받아 부모 빚을 메운다. 부모 자녀 간 모든 금전 거래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탁은 자녀의 경제 기반을 부수고 회복 불가능하게 만든다. 쿠키뉴스는 지난해 하반기 부모의 금전 요구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취재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협박을 듣거나 폭력에 시달린다. 신용불량에 빠져 빚에 허덕이고, 때로는 죽음까지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정사로 축소돼 드러나지 못했던 이야기다. [편집자주]
가족과 돈을 주고받는 방법을 배운 사람은 몇이나 될까. 전문가들은 부족한 금융 지식이 경제적 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금융교육은 낯설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20년 만 19세 이상 일반 국민 1002명과 초·중·고 교사, 금융교육 전문 강사를 대상으로 금융교육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92.4%가 ‘금융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쿠키뉴스가 지난해 10월17일부터 31일까지 청년 104명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를 한 결과도 비슷하다. 응답자 2명 중 1명은 ‘금융교육을 받은 적 없다’고 했다.
금융 지식이 부족하면 경제 위험에 빠지기 쉽다. 쿠키뉴스가 취재한 사례에 따르면 한 청년은 어머니가 본인 명의로 많은 빚을 져 상담 기관을 찾았다. 그는 “엄마가 썼는데 왜 내가 갚아야 하냐”고 재무 상담가에게 되물었다. 본인은 명의만 빌려줬을 뿐, 갚아야 할 의무는 어머니에게 있는 것 아니냐는 뜻이다. 모든 금융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공인인증서를 깊은 고민 없이 부모에게 넘기기도 한다. 전영훈 서울시복지재단 청년동행센터 상담위원은 “특히 취약계층 중에서 경제적 기본 개념,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태형 금융감독원 금융교육교수는 “금융 교육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비해 청년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부모를 대상으로 한 금융교육도 중요하다. 부모의 금융 지식이나 돈을 대하는 태도는 자녀에게 영향을 미친다. 박종옥 충북대학교 소비자학과 강사 등은 지난 2017년 발표한 논문에서 돈에 대한 신념은 어렸을 때부터 정립된다고 분석했다. 부모의 영향에 따라 좌우된다는 의미다.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도 저축, 부채 등 금융 활동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 세대를 위한 지원책도 촘촘해져야 한다. 나윤주 서울회생법원 회생위원은 “부모가 신용 불량일 때, 자식 카드를 쓰거나 명의를 빌리는 행동으로 이어진다.”며 “부모 선에서 빚의 고리를 끊어 자녀에게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도움이 필요한 청년을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통합 기관이 필요하다. 현재는 기관마다 목적과 성격이 달라 파편화된 정보를 얻는다. 재무 개선을 통해 부채 해결이 가능한 청년에게 회생·파산을 안내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원스톱 시스템에는 피해자 심리지원도 포함돼야 한다. 경제적 학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서 지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비영리기구 ‘여성의 자율권을 위한 센터’(CCFWE)는 경제적 학대 트라우마 회복을 위해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영국 ‘국가 가정 학대 헬프라인’(Refuge)과 미국 비영리단체 ‘가정 폭력 근절을 위한 전국 네트워크’(NNEDV)도 경제적 학대 피해자들에게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전문가는 부모의 금전요구로 인한 청년의 빚이 국가 경제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청년 파산 규모가 커지면 이는 국가 부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은 “청년이 부모의 경제적 학대로 지게 된 채무 문제는 한 가정, 더 나아가 사회 전체와 관련 있다.”고 설명했다. 공공·민간 금융기관이 나서야 한다는 제언도 있었다. 최 의원은 “금융감독원이나 금융위원회 같은 정부 기관부터 시중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이 문제를 같이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