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논쟁만 하는 사이 주요국 달아나…한국판 IRA 반드시 필요”

“탄소중립, 논쟁만 하는 사이 주요국 달아나…한국판 IRA 반드시 필요”

- 대한상의 ‘제6회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 개최
- 韓 탄소중립 문제점·보완점 놓고 ‘민·관·학·정’ 한 자리 모여
- 최태원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 충분히 공감하셨을 것”

기사승인 2024-10-31 06:00:09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탄소중립 정책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재민 기자 

제조업 중심의 대한민국 산업계가 글로벌 탄소규제 및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탄소중립 속도·에너지 전환에 있어 더욱 적극적인 정책·지원이 동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3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6회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에선 우리나라의 탄소중립 이행과정의 문제점, 미국·EU(유럽연합) 등 주요국의 탄소중립 정책 동향과 시사점 등에 대해 민·관·학 주요 인사들이 모여 폭넓게 의견을 교류했다.

‘한국 탄소중립 이행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발표한 조홍종 단국대학교 교수는 “탄소중립은 열에너지와 수송에너지를 포함한 ‘청정발전원의 전기화’, 그리고 화석연료의 CCUS(탄소포집 및 활용·저장)가 핵심”이라며 “특히 AI시대에 따른 데이터센터 등 급증하고 있는 전력소비량에 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사용량은 지난 2022년 460TWh(테라와트시)에서 2026년 1050TWh로 2배 이상 급증할 전망이다.

조 교수는 “국내 산업 경쟁력을 제고하려면 송배전망 적기 건설, 전력시장 제도 개편 등을 통해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CO2 감축은 단순히 환경적 측면으로만 볼 수 없고, 과학적 관점(청정전기화 등)과 경제적 관점(수익), 민주적 관점(국민적 동의) 등 세 가지 측면에서 합리적으로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종합적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진행된 대담에선 ‘한국의 탄소중립 문제점과 진단’을 주제로 각계 전문가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토론을 이어갔다.

조홍종 단국대학교 교수가 한국 탄소중립 이행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재민 기자 

홍종호 서울대학교 교수는 “송배전망 관련 지적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지만 전력설비가 들어서는 지역과 수요처 그 사이의 균형을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이제는 현재 한국의 상황에 맞는, 한국적 탄소중립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이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최하위를 탈출하기 위한 대대적인 정책 전환이 일차적인 목표가 돼야 하고, 그 이후에 원전이든 재생에너지든 한국에 맞는 조건이 추가적으로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주헌 동덕여자대학교 교수는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목표치는 890TWh인 반면 추산한 입지매장량은 369TWh에 불과한데, 이는 우리의 탄소배출 순위 등을 고려할 때 실현가능한 도전적 목표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재생에너지의 점진적 확대도 중요하나 현재 전력계통, 전기저장의 기술적·경제적 한계 등을 고려하면 원전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해결책 중 하나이기에, 양쪽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 계획의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국가·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한국 제조산업에 대한 지원이 시급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민동준 연세대학교 교수는 “그동안 석탄·석유 등 글로벌 스탠다드가 형성돼 있는 가격에서 에너지비용을 지출해왔다면, 현재는 각 나라마다 수소·전력 가격도 다르고 관세장벽·탄소장벽 등이 생겨 우리 기업들의 에너지 전환에 있어서도 상당한 비용이 소요된다”면서 “결국 기술적 옵션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중요한데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이 없으면 기업은 이탈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R&D(연구개발)에 있어 대폭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이사 역시 “우리가 지리적 한계, 각종 연구용역 등에 그치는 사이 미국·EU 등 선진국은 발 빠르게 기업 중심의 정책을 실현해가고 있고, 그 수단으로서 탄소중립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며 “기업을 살릴 한국판 IRA(인플레이션감축법)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토대로 고용 창출을 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기업들은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뒤이어 정재훈 맥킨지앤드 컴퍼니 파트너는 ‘주요국 탄소중립 정책 동향과 시사점’에 대해 발표하며 세계 주요국의 탄소중립 정책 트렌드를 소개하고, 현재 시장의 기후기술 및 지속가능성 기반 비즈니스의 잠재력에 대해 분석했다. 정재훈 파트너는 “전 세계 GDP의 90%를 차지하는 G22 주요국 등 15개국은 ‘탄소가격제’를 도입하고 5개국은 도입 준비 중”이라며 “유럽 및 일본에서 ‘언제까지 어떤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정책이 굉장히 뚜렷하고, 미국은 탄소중립 목표도 목표지만 이와 관련된 자금을 ‘어디, 어느 곳에 지원하겠다’라는 계획이 굉장히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산업, 전력 등 15개 섹터별로 우리가 잘 하고 있는 것과 못하고 있는 것을 잘 구분해, 부분적으로 집중화된 추가 대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이 ‘우리나라 탄소중립 정책의 한계와 개선방안’과 관련해 진행된 대담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김재민 기자 

이어진 두 번째 세션의 대담에선 ‘우리나라 탄소중립 정책의 한계와 개선방안’에 대한 여야 의원 등의 토론이 이어졌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선진국들은 새로운 에너지에 따른 산업정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온 반면, 우리는 이 부분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면서 “특히 산업통상자원부 주도로 기후대응을 신성장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산업정책이 확실하게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이어 “이러한 산업정책을 기반으로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금융정책(기후금융 등)이 필요하며, 아울러 국익을 지켜가면서 우리의 철강·조선 등 탄소 다배출 5대 산업을 어떻게 기후위기에 대응하며 발전시켜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8월 ‘탄소중립기본법’이 헌법재판소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지적하며 “우리나라의 탄소중립 정책은 목표만 정해졌을 뿐, 이행 및 실효성을 위한 대책, R&D 지원 등 세부적인 수단들이 부재한 것이 문제”라며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천해야 하는데 그 경로를 설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오늘 탄소중립과 관련해 깊은 논의가 이어졌고 명확한 해결책을 도출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렵고 복합적인 문제인지에 대해선 충분히 공감하셨으리라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탄소 감축에 대한 새로운 해법들이 나올 수 있기를 기원하고, 대한상의 역시 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리들을 많이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김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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