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의 커피소통㊳] 커피와 허세

[최우성의 커피소통㊳] 커피와 허세

기사승인 2017-05-23 09:32:17

서울의 어느 신흥부촌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어느 자매가 있었다.

상권이 중요하다고 해서 나름 비싼 월세도 감수할 요량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역세권 주변에 30평 매장을 확보했다.

인테리어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들지는 상상도 못했지만 이 지역에서는 인테리어가 매상을 좌우한다고 해서 생각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

비싼 원두와 카페재료들을 사용하고, 임금을 더 주고 젊고 매력적인 바리스타들을 고용했다.

매장을 오픈하자마자 정말 기대한 것만큼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그런데 자주 찾아오는 손님들 중에 커피잔으로 불평하는 사람이 생겼다. 하루는 주인을 조용히 부르더니 분위기도 좋고 맛도 좋은데 커피잔이 맘에 안 든다고, 이 동네에서는 비싼 도자기잔을 써야 된다고 커피잔 브랜드까지 알려주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카페 인테리어 비용에 머신에, 각종 장비구입에 들어간 비용이 너무 커서 더 이상 투자할 돈도 없지만, 그래도 그래야 한다기에 알아본 유럽 유명메이커의 커피잔 세트의 가격은 충격적이었다. 

두 잔 컵과 받침세트가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것부터 그 이상의 것도 즐비했기 때문이다.

언니는 가격을 알아본 후에 이런 맘이 들었다. “커피 한잔을 팔아서 얼마가 남는다고 이렇게 비싼 잔을 사야 하나. 이것이야말로 허영이고 사치지…”

그런데 동생의 생각은 달랐다. “언니야 우리도 좋은 컵, 비싼 컵 사 놓자. 그래야 이 동네에서 장사 할 수 있다 안하나~”

원래 자매가 구비해놓은 잔도 저렴한 것은 아니었다.나름 상권을 고려해서 영국산 ‘로얄 알버트’사의 2인용 커피잔 세트를 8만원씩에 구입했던 것이다.

며칠 후 카페에 고급차를 타고 온 젊은 손님이 5천원짜리 카푸치노를 시켜 놓고는 비웃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이 동네에서 이런 커피잔을 쓰는 카페도 있네~주인이 분위기 파악을 못하나봐~”

자매는 적잖이 당황했다.그래서 다음날 자매는 부유층이 선호한다는 백화점에 가서 비싼 커피잔 세트를 30만원에 구입했다.

며칠 뒤에 그 젊은이가 또 방문했길래 자매는 구입한 비싼 잔에 담아 테이블로 내보냈다.

그런데 그 젊은이가 커피잔을 보더니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와~이거 비싼 잔이네...그런데 이거 진짜야? 짝퉁 아냐?"

옆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손님이 듣다못해 한마디 했다.

“ㅇㅇ하네~커피 맛도 모르는 것들이~ 니들이 커피 맛을 알어?”

잔이 좋아야 커피 맛이 좋기는 하다. 종이컵보다는 세라믹 머그컵이 좋고, 그보다는 얇고 보온성이 좋은 도자기잔이 좋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의 인격이다. 카페를 운영하다가 보면 소위 진상손님들을 만나기도 한다. 

마치 손님은 왕이라는 듯이 종업원을 하대하며 이것저것 조언한답시고 평가해대는 손님은 대하기가 참 어렵다.

잔보다 커피의 맛과 향이 중요하고,그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

커피는 때로는 소통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기과시와 허세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조심해야 한다.

필자가 농촌에서 5년정도 생활할 때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 때 농촌 촌부의 가정을 방문하면 대접하는 최고의 대접이 커피였다.

국 그릇에 멕스웰하우스 분말 커피를, 밥 먹는 큰 수저로 하나, 설탕을 두세 숫가락 넣고,  펌프로 방금 끌어올린 시원한 지하수를 넣고 휘휘저어 대접하는 커피였다.

너무 달고 양이 많았지만 맛은 일품이었다. 비록 국그릇에 대접받는 커피였지만 대접하는 마음과 정성을 알기에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마셨다.

커피잔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수십 년 전 농촌 촌부가 내게 대접해 준 국사발 커피는 언제까지라도 그 맛과 향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글=최우성(인덕대 외래교수. 커피비평가협회(CCA) 서울 본부장, 웨슬리커피 LAB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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