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안대고 닐로 먹었다”는 ‘손 안대고 날로 먹었다’의 오타가 아닙니다. 17일 올라온 가수 숀(SHAUN) 관련 기사에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 같은 댓글이 달리고 있습니다.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부연 설명이 필요합니다.
17일 오전 8개 음원차트 상위권을 장악하고 있는 노래들은 차트마다 비슷합니다. 발표하는 곡마다 음원차트에서 강세를 보이는 그룹 트와이스, 블랙핑크, 마마무, 에이핑크, 볼빨간 사춘기 등 여성 가수들의 노래가 상위권에 올라 있습니다.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들입니다.
하지만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 트와이스도 마마무도 아닌 가수 숀(SHAUN)입니다. 밴드 더 칵스(KOXX)의 멤버로 인디 음악계에서는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가수라지만, 그의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대중들이 더 많을 겁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가수의 신곡이 20일 동안 역주행을 거듭한 끝에 트와이스까지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이죠. 한 편의 판타지 드라마 같은 이야기입니다.
숀의 1위는 한 음원차트에서 반짝한 것도, 음원사이트의 오류도 아닙니다. 숀이 지난달 27일 발매한 미니앨범 ‘테이크’(Take)의 수록곡 ‘웨이 백 홈’(Way back Home)은 17일 오전 10시 기준 멜론, 지니, 올레뮤직에서 실시간 음원차트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엠넷차트에선 2위, 벅스에선 3위입니다. 여러 차트에서 동시에 1위, 혹은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전방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곡인 것이죠. 이렇게 인기가 급상승하는 곡이 어떤 노래인지 관심이 생겨 한 번씩 들어보는 이용자들도 많을 거예요.
하지만 숀의 1위는 환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재기 논란에 휩싸인 것이죠. 누군가 불공정한 방식으로 스트리밍 순위를 올린 결과가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미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 닐로의 ‘지나오다’ 역시 음원차트에서 깜짝 1위를 기록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지난해 10월 발표한 곡이 약 6개월 만에 트와이스, 엑소-첸백시, 위너 등을 제치고 1위를 자치했으니 놀라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입니다.
업계 관계자들과 언론, 네티즌들은 모두 ‘지나오다’의 음원차트 1위에 대해 강한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기획사가 자사 가수의 음반을 몰래 사재기해 판매량을 높이는 것처럼, 닐로도 불법적인 방법으로 음원 순위를 올린 것 아닌지 의심 받은 것입니다. 실제로 닐로가 소속사 리메즈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한 지난 2월 이후부터 음원 순위와 화제성이 급상승한 것도 수상한 일이었죠.
닐로의 소속사 측은 음원 사재기 의혹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불법적인 사재기가 아닌 합법적인 바이럴 마케팅과 자신들만의 노하우로 이뤄낸 결과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와 관련된 많은 의혹과 논란이 있었지만 명확히 밝혀진 건 없습니다.
결국 사재기 의혹에 대한 대책도 마련됐습니다. 지난 9일 국내 6개 음원서비스 사업자(네이버뮤직, 벅스, 멜론, 소리바다, 엠넷닷컴, 지니)로 구성된 가온차트 정책위원회는 오전 1~7시 6시간 동안 차트를 운영하지 않는 ‘차트 프리징’(Chart Freezing)을 11일부터 적용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음원 소비량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심야 시간대를 노린 음원 사재기 시도를 차단하겠다는 목적이었죠.
하지만 시행 6일 만에 비슷한 일이 반복되며 차트 프리징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숀의 ‘웨이 백 홈’은 차트가 중단되기 전인 자정과 오전 1시에 이미 1위를 차지해 새로운 정책이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숀의 1위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들어보지도 못한 가수의 신곡이 나타나 인기 아이돌의 히트곡을 앞지르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분위기입니다. 만약 음원 사재기라면 근절시키기 위한 적절한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이고, 입소문에 의한 정당한 1위라면 지금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겠죠. 그 어느 쪽도 아닌 현재로선 “숀 안대고 닐로 먹었다”고 조롱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이네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