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 중인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이하 신 만관제)’이 의과 중심체계를 갖췄다는 이유에서 한의계와 치과계가 반발하고 있다. 이에 보건복지부가 신 만관제에 한의과와 치과를 참여시킬 수는 없지만 별도의 사업을 논의할 수는 있다고 시사했다.
앞서 6월 26일 보건복지부는 새로운 동네의원 중심의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을 연내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급격히 진행되는 사회구성원의 고령화와 만성질환자 급증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일차의료서비스의 질을 제고하고, 보건의료와 지역사회 돌봄 체계(커뮤니티 케어)를 연계한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겠다는 방향도 제시했다.
당시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국민이 일차의료를 신뢰하며 이용할 수 있고, 일선 의료기관에서는 질환의 예방과 관리를 위한 적정 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하며, 지역사회는 이를 위한 자원의 연계와 활용 체계를 갖춰야한다”면서 시범사업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논의해 구체화하고 실현시킬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문제는 정부가 세운 계획을 두고 보건의료계가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의과의 경우 간호조무사가 대부분인 동네의원의 실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설계라고 비난했다.
복지부가 내놓은 시범사업 모형에서 지역사회와 의료기관을 연계하거나, 만성질환자가 일상생활을 하는 틈틈이 만성질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등을 지원,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할 ‘케어코디네이터’가 간호사나 영양사, 운동치료사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김종웅 대한개원내과의사회장은 “추진단계에서 의사들이 배제돼 임상현장의 의견이나 현실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다”면서 “케어코디네이터의 자격제한을 없애 환자와의 친밀도가 높으며 의원에 많은 간호조무사가 케어코디네이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의료정책포럼’을 통해 주장했다.
의과를 제외한 직역에서는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대한치과의사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 대한간호협회는 29일 현재 추진하고 있는 시범사업이 의과 중심으로 편중돼 사업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만큼 타 보건의료인의 참여를 보장하라는 내용의 공동성명도 발표했다.
급속한 고령화와 만성질환의 증가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 증가를 막고, 국민건강의 증진과 삶의 질 향상을 실현해 선진 복지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의과 중심으로 수년간 진행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만관제를 통합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업에 참여하는 의료공급자를 보다 다양하게 확대해 국민의 의료선택권을 보장하고, 실질적인 일차의료가 가능한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각 직역은 사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신 만관제는 기존의 ▶고혈압·당뇨병 등록관리사업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 ▶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 ▶만성질환관리 수가 시범사업을 하나로 통합한 의과 중심 모형으로 만들어져 타 직역의 참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시범사업은 일차의료기관에서 고혈압, 당뇨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을 넘어 생활습관을 계속 고칠 수 있도록 돕고 약물복용이나 합병증 위험을 계속 관리하는 서비스”라며 “진료와 진단, 처방, 약물까지 일련의 과정을 모두 이해하는 사람이 해야 괴리가 없고, 기존의 사업방식이 거의 의과 중심으로 돼 있어 통합의 의미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의과나 치과의 경우 이러한 모형이 아직은 없다. 한의과의 경우에는 고혈압이나 당뇨를 진단하는 진단명이나 약물처방의 경우에도 의과와 달라 지금 모형에 들어갈 수는 없다”면서 “의료계에서 모형을 연구해 만들었든 한의계도 별도의 모형을 개발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렇게 해보자고 한의계와 얘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한의계 등의 별도 만성질환 관리모형이 개발돼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시간적인 면이나 의료계의 반응으로 볼 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한의협 관계자는 “나중에 따로 논의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다음이라고 다를지도 모르고 될 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의협 관계자는 다른 의미에서 반대의사를 밝혔다. 그는 “지금의 진단 및 관리체계에서 한의사가 만성질환관리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면서 “국가가 의료체계를 이원적으로 운영하며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복지부는 올해 말까지 4가지 만성질환 관리사업 중 ▶지역사회 만성질환 시범사업과 ▶만성질환관리 수가 시범사업을 우선 통합해 의원의 역할을 강화하고 수가적용을 통해 현장의 수용성과 사업 확산의 바탕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후 내년에는 본인부담 감면, 수가 인상 등을 포함해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를 추가 통합하고 고혈압·당뇨병 등록관리사업까지 합쳐 하나의 만성질환 관리사업을 구성하고, 지역사회 보건의료 자원과의 연계를 통해 보다 높은 수준의 촘촘한 관리체계를 갖출 예정이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