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어닝쇼크로 주가와 신용도 모두 하락세를 보이는 등 총체적 난국을 겪고 있다. 해외매출 부진, 국내 자동차 판매 점유율 하락, 오너와 임직원의 모럴헤저드에 따른 인건비 증가까지 겹치며 실적 개선 가능성도 안갯속이다.
또한 정몽구 회장이 천문학적 금액(10조5500억원)으로 매입한 한국전력 부지 공사도 난항을 겪으면서 다시 한번 도마에 오르고 있다. 회사의 장기적 투자와 상관없는 기회비용 손실을 냈다는 책임론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현대차그룹 내 2인자 정의선 부회장의 승계구도도 꼬이게 되면서 오너 경영 체제도 불안정한 상황이다.
◇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 2014년 이래 실적 하향세 뚜렷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의 실적은 2014년 이래 하향세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핵심 계열사 현대자동차는 2014년 말 7조55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나 이듬해 2015년 6조3579억원, 2016년 5조1935억원, 지난해 4조5747억원으로 내림세를 보였다. 올해 현대자동차 3분기(누적 기준) 영업이익은 1조9210억원으로 전년 동기(3조7994억원) 대비 49.43% 감소했다.
현대모비스 실적도 2014년 말 이후 내리막길을 탔다. 현대모비스의 영업이익은 2014년 말 3조1412억원이었으나 2015년 2조9346억원, 2016년 2조9047억원, 2017년 말 2조249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1조4432억원으로 전년동기(1조7055억원) 대비 15.37%감소했다.
영업손익 외에도 수익성도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현대차의 2014년 말 영업이익률과 ROE(자기자본이익률)는 각각 8.46%, 13.41%를 기록했으나 올해 3분기는 1.18%(영업이익률), 3.87(ROE)로 크게 하락했다. 현대모비스도 지난 2014년 두자리수(15.82%)의 ROE(자기자본이익률)을 기록했으나 올해(2분기 기준)는 4.53%로 떨어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의 실적 부진(하향세)에 대해 “자동차 시장이 위축되고,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 매출이 감소하면서 영업이익이 부진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올해 3분기 기준 한국시장에서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한 52만6000대를 판매해 46.4%의 시장 점유율(수입차 제외)을 차지했다. 하지만 미중 시장에서는 모두 점유율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서 전년비 2.0% 감소한 50만2000 대를 판매해 3.9%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했다. 투싼의 판매가 전년비 25.0% 증가했지만, 엑센트 및 쏘나타의 판매가 51.1%, 24.8% 감소해 전체 판매는 감소했다.
◇ 정몽구 회장의 통큰 투자 사업 ‘한전부지 매입’ 애물단지 전락 우려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실적 부진으로 인해 한전부지 사업이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다. 한전부지 매입이 최근 영업부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아니지만 장기재원을 위한 기회비용을 날렸다는 지적이 불거지고 있어서다. 게다가 인수 금액은 애초 감정가(3조3346억원) 보다 3배 이상 많은 금액이라는 점이다.
이미 증권가에서는 지난 2014년 당시 현대차 정몽구 회장의 한전부지 인수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투자증권은 “한국전력 본사 부지 입찰 결과로 인해 R&D(연구개발)와 M&A(인수합병)에 쓸 장기재원의 손실이 불가피하다”라고 지적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도 “한전부지 매입은 자동차사업 투자와 무관한 것”이라며 “부동산투자(자산 증식)의 관점으로 본다면 큰 문제는 없겠지만 결국 오너일가의 독단적 행위가 낳은 결과물”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한전부지 사업 재개는 불투명한 상태다. 강남구 삼성동 내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연초에 착공을 해야 2021년 예정대로 준공이 이뤄지는데 늦어도 내년 초에 착공해야 한다”며 “그렇다고 재매각도 어려운 상황이다. 누가 그 정도의 액수를 다시 사려고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실제 한전부지 사업이 지지부진해지자 업계에서는 ‘재매각설’ ‘TF(테스크포스)팀 해산설’ ‘사업 부진으로 잠정 연기’ 등 각종 루머가 불거졌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현재 한전부지 사업은 잠정적인 중단이 아닌 정부(국토부)의 심의에 의해 진척이 안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 암울한 전망에 정몽구·정의선 오너일가 승계 ‘안갯속’
현대차그룹의 위기는 이번 실적 부진은 일시적이지 않다는 전망이 나왔다는 점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연말 뿐만 아니라 내년에도 현대차 계열사들의 실적에 대해 낙관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하이투자증권은 최근 국제 신용·평가기관 S&P가 현대차 그룹의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조정했다며, 신차 라인업과 신흥시장 부문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악순환 사이클로 접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진투자증권 이재일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 상승과 싼타페 북미 출시라는 호재가 있었으나 G2(미국·중국) 판매 부진과 제조원가 상승으로 자동차부문 저마진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며 “3분기에 이어 4분기 실적 전망도 밝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적이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현대자동차 오너일가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급여는 지난 4년 간 실적(영업이익)이 가장 좋았던 시기(2014년, 상반기 기준) 보다 올해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급여는 각각 28억3600만원, 8억3900만원으로 지난 2014년(24억, 7억2600만원) 보다 더 많은 금액을 챙겼다.
현대차그룹 내 직원들도 실적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도 생산성 증대는 타국과 비교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자동차 공장 생산성 지표인 하버리포트에 따르면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자동차 1대를 생산하는 데 투입되는 시간은 평균 26.8시간이다. 르노의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16.2시간)의 시간과 비교하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이에 현대차 관계자는 “아무래도 노조가 강성인 탓”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정의선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승계 구도 작업도 고민거리다. 올 상반기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이 헤지펀드 엘리엇의 방해로 사실상 무산됐다. 현재까지 정의선이 최대 지분을 가진 기업은 현대글로비스(23.29%)와 현대엔지니어링(11.72%)이다.
업계에서는 “정의선 부회장의 경우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과 달리 현재 그룹 내에서 확실한 자기사람이 없다는 평가다”라고 지적했다. 건설업계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 상장도 고려해 볼 만한 하겠지만 현재까지 장외주식 시장에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고민이 클 것”이라며 “또한 최근 현대엔지니어링 노조(지부) 결성은 정 부회장 달가운 상황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