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산이의 신곡 ‘페미니스트’(FEMINIST) 관련 논란을 누구나 동의할 수 있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누군가의 눈에는 아티스트의 예술 작업을 대중의 오해와 무지가 망친 것으로 보일 수 있고, 다른 이에겐 어떻게든 페미니즘 논란에 숟가락을 얹고 싶은 한 한국 남성 래퍼의 관심 구걸로 비칠 수 있다. 어쩌면 산이는 제2의 마미손이 되어 진지하게 한국 힙합을 망하게 만들 작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계획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게 문제지만.
'페미니스트'를 발표한 지난 16일부터 23일까지 일주일 동안 산이가 의도한대로 되는 건 거의 없어 보인다. 산이는 래퍼 제리케이의 디스에 맞선 신곡 ‘6.9㎝’을 발표하며 이전 곡을 설명할 “좋은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것도 부족해 이틀 만에 “여성 혐오 곡이 아니다”, “화자는 내가 아니다”는 내용의 해명글과 가사 해석을 내놨다. 최근엔 유튜브와 SNS에 달린 댓글들을 읽는 리액션 영상까지 찍으며 자신과 ‘페미니스트’를 둘러싼 논란에 대응했다.
그럼에도 논란은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산이의 해명에 ‘페미니스트’의 의미가 뒤집히자 누군가는 더 분노하고, 누군가는 신이 나서 더 조롱한다. 산이가 의도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를 계속 비난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의견도 엇갈린다. 이제와서 산이의 의도를 받아들이고 곱씹기엔 어정쩡한 상황이 됐다. 산이가 지지한다는 ‘진짜 페미니스트’들이 그를 응원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뭔가 잘못된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산이가 멈추면 좋았을 순간들을 다시 되돌아봤다.
△ 11월 22일 - 댓글 리액션 영상 공개
해명을 해명하는 것이 필요한 일이었을까. 유튜버들의 리액션 영상 형식을 빌린 이 영상에서 산이가 강조하는 건 당당함이다. ‘페미니스트’와 ‘6.9㎝’가 얼마나 많은 조회수로 주목받았는지에 놀라워하는 모습으로 시작하는 영상은 자신에 대한 비판과 응원을 균형 있게 보여준다. 산이는 일부 비판은 수용하지만 단순 비방글에는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맞대응한다. 아직 산이가 죽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당당하다는 걸 보여주는 태도다.
이번 일로 자숙을 선언하거나 의기소침할 필요까진 없다. 하지만 굳이 자신이 망쳐놓은 논란에서 재미성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여유를 보여줄 필요도 없었다. 구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굳이 안 해도 됐을 일이다.
△ 11월 19일 - SNS 해명
꼭 해명을 해야 했을까. 산이는 마치 마술의 비밀을 공개하는 마술사처럼 사실은 이런 의도였다고, 여기에 이런 장치가 있었다고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곡의 설정이 미약했고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았다는 걸 인정한 결과다. 오랜 팬마저 실망했을 정도로 그의 의도를 파악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얘기다.
그의 해석을 읽고 다시 들어봐도 ‘페미니스트’에는 여전히 진짜 페미니스트와 가짜 페미니스트를 가르고 남성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노래로 들린다. 그의 바람처럼 페미니즘 그 자체를 이야기하는 노래로 들리지 않는다는 건 치명적인 문제점이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밝힌 해명은 변명이 됐다. 변명을 읽고 산이가 생각만큼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이 몇이나 됐을까. 일부 오해가 풀린 동시에 더 큰 궁금증이 생겼다. 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 걸까. 산이의 해명이 그것까지 설명해주진 못한다.
△ 11월 17일 - ‘6.9㎝’ 공개
맞았다고 꼭 되갚아줘야 했을까. ‘6.9㎝’를 통해 산이가 던진 화두는 개인의 것으로 변질됐다. 산이의 페미니즘적 입장을 공격한 제리케이에게 개인 감정을 담은 비판으로 응수한 것이다. 덕분에 곡 설명을 덧붙이려던 의도와 달리 ‘페미니스트’는 더욱 산이의 생각을 담은 노래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자신의 행사가 취소됐다며 “메갈민국”을 외치는 산이의 가사는 해명글에서 주장한 내용과도 잘 맞지 않는다. 그로선 당연히 발표해야 했을 맞디스 곡이었겠지만, 상황 전체를 보지 못했다. 이번 사태가 악화된 결정적인 계기다.
△ 11월 16일 - ‘페미니스트’ 공개
어쩌면 처음부터 문제였던 게 아닐까. ‘페미니스트’에는 몇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먼저 오독의 여지가 많았다. 가상의 화자를 내세운 것이라 해도 그 화자와 산이를 구별할 근거가 별로 없었다. 그가 페미니즘에 관해 갖고 있는 입장이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도 아니고, 누나와 여동생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만큼 대중이 그에게 관심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간과했다.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내용이 산이의 공식 입장처럼 읽히는 게 더 자연스러웠다.
타이밍도 문제였다. 앞서 같은 날 산이는 “이수역 사건 새로운 영상”이라는 글과 영상을 올리며 이수역 폭행 사건에 다른 관점이 있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페미니스트’가 남성 입장에서 여성들을,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뉘앙스로 보이는 건 당연했다.
산이가 어떤 생각을 하든,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표현하든 자유다. 하지만 이후에 미칠 파급효과와 자유로운 표현이 누구를 이롭게 하고 누구를 고통스럽게 할지 생각해봐야 했다. 산이 본인은 시원하게 표현 욕구를 해소했거나 창조적인 작업에 만족해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건 실패했다. 그를 비롯한 남성 래퍼들에게 페미니스트가 되어달라는 요청도 없었고, ‘모순적인 말과 행동으로 여성을 어떻게 해보려는 남성을 비판’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표현의 자유를 방패삼아 저지른 성급하고 불필요한 행동이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산이 인스타그램, 유튜브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