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침체와 성장률 둔화 가능성에도 열기가 식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바로 재테크 불패 지역으로 불리는 강남 부동산 시장입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인해 지방과 수도권 일부 지역 시장이 냉랭해지고 있지만 강남 시장은 굳건히 버티고 있습니다.
지난달 분양한 삼성물산의 ‘서초 래미안 리더스원’은 232가구 모집에 9671건이 접수돼 41.69대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중도금 대출 규제, 입주 시까지 전매 금지 등의 규제 방안에도 강남 부동산(아파트)를 살려는 현금 수요자들이 여전히 있다는 얘기죠.
하지만 강남은 애초부터 자산가들이 많은 곳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40년 전만 하더라도 낙후된 허허벌판 지대에 불과했습니다. 그럼 강남 시장의 특수성 그리고 성장한 배경과 투기 역사 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강남불패’는 ‘동방불패’ 보다 강하다?…천정부지로 오른 강남권 부동산
부동산 재테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강남불패’라는 얘기를 종종 들으셨을 겁니다. 강남구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리먼브라더스 파산,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에 주춤했을 뿐 수도권 주택시장을 주도해 왔습니다.
현재 강남3구 아파트 매매 시가총액(2018년 11월 기준)은 400조원이 넘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GDP(1555조원)에 25%를 차지하는 규모입니다. 또한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12월 5일 기준 시가총액 271조원)을 비롯한 국내 상장 대기업 10개 이상을 살 수 있는 금액입니다.
가격도 크게 오른 상태입니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현재 강남구 매매가는 3.3m²당 4857원으로 지난 2012년 1월(3168만원)과 비교해 53.31% 증가했습니다. 코스피 지수의 지난 6년 간(2012년 1월~2018년 12월 5일 기준) 상승률(15%) 보다 3배 가까이 오른 것입니다.
건설산업연구원 두성규 박사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강남권은 도시계획도시처럼 주거와 상업지역, 사회적 기반시설(교통, 교육) 등이 갖추어졌기 때문”이라며 “최근에는 재건축 바람이 불면서 더욱 주목받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게다가 강남의 개발 호재는 여전히 풍부합니다. 개포동 일대 재건축 외에도 강남구 삼성동은 2023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영동대로 지하 통합개발’과 같은 대형 개발사업이 있습니다. 이 사업이 마무리되면 GTX 개통과 함께 위례신사선, 남북광역급행철도 등 6개의 광역철도가 한꺼번에 삼성동에 들어서기에 큰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 강남 개발의 역사…박정희 개발독재의 산물
강남과 강북의 격차는 처음부터 컸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40여년 전만 하더라도 강남은 논밭으로 이뤄진 허허벌판 지대에 가까웠습니다. 두 지역의 격차가 커진 것은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였습니다. 강남의 성장은 ▲냉전시대의 특수성에 따른 강남 개발 ▲강북의 인구과밀 해소 ▲경부고속도록 건설에 따른 수혜 ▲부동산 투기를 통한 정치자금 마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입니다.
‘강남의 탄생’(강희용, 한종수 저)이라는 저서와 전강수 교수(대구가톨릭대 경제통상학부)의 논문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강남개발’에서 강남 개발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박정희 정부는 당시 분단체제로 인한 안보 불안이 커지자 휴전선에서 40km 떨어져 있는 강북에 인구와 시설이 느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북한공작원이 1968년 1월 21일 청와대 습격 사건(1.21사태)는 이를 부추기는 촉매제 역할을 했습니다.
강북에 지나치게 많은 인구와 중요 시설이 집중되면서 부작용을 줄이려 했고, 경부고속도로 건설 추진은 강남 개발에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박정희 정권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추진되면서 재원이 부족해지자 영동지구 구획정리 사업을 하게 됩니다. 실제 영동대교, 잠실대교, 성수대교는 박정희 정권 시기에 건설된 다리입니다.
또한 교통, 학군, 인프라를 강남에 집중시킵니다. 당시 정부는 대법원·검찰청과 8학군으로 불리는 유명 고등학교를 강남으로 옮겼고,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철 순환선(2호선), 잠실종합운동장을 건설하게 됩니다.
반면 박정희 정권은 강북의 개발은 의도적으로 억제합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강북 지역 내 백화점, 도매시장, 고장, 고등학교, 유흥업소 신설을 억제합니다. 또한 강북 지역 도심 일대 넓은 지역을 재개발지구로 지정해 일반건축물의 신축·개축·증축을 금지시켜버립니다
박 정권의 지역 불균형 개발 결과 1963년부터 1979년까지 16년간 강남구 학동의 토지값은 1333배, 압구정동은 875배, 신사동은 1000배 올랐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강북인 중구 신당동, 용산구 후암동은 각각 25배 오르는데 그쳤습니다. 즉 강북이 낙후된 까닭은 정부의 강력한 개발 억제와 강남에 편중된 투자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개발 수혜로 큰 ‘강남’, 부동산 투기 중심되다
우리나라 부동산 투기는 박정희 정부의 강남 개발과 맞물리며 본격적으로 활성화됩니다. 장상환 (경상대 경제학과)교수는 ‘해방 후 한국자본주의 발전과 부동산 투기’라는 논문에서 “1970년대 최대의 부동산투기는 강남 신도시 개발”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박정희 정권은 1973년에 영동 구획정리 지구를 개발촉진지구로 지정했고 양도소득세, 국세,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면허세, 도시계획세 등을 모두 면제해 버립니다.
또한 박정희 정권은 택지개발을 하면서 부지를 사들이지 않고 3분의 1만 체비지(도시지역사업을 할 때 그 비용을 토지로 받기 위해 남겨두는 토지)로 공제해 원래 땅 주인에 돌려줬습니다. 이 사업은 말죽거리(양재역 부근)의 부동산 투기를 유발하면서 토지 가격 상승을 부추겼습니다. 1966년 초 3.3㎡ 당 200~400원이던 땅값이 1968년에 3.3㎡당 6000원으로 올랐습니다.
이후에도 부동산 시장은 1997년 말 외환위기 후 IMF체제를 맞으면서 다시 빗장을 열게 됩니다. 김대중 정부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건설사를 활성화하기 위해 부동산 규제를 풀게 됩니다. 분양권 재당첨 금지 기간 단축, 청약 자격 제한 완화, 분양가 자율화, 양도세 한시 면제, 취등록세 감면, 분양권 전매 허용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합니다. 이는 2001년 저금리 기조가 본격화하면서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게 됩니다.
강남 고가 주상복합의 상징 중 하나인 도곡동 타워팰리스는 지난 1999년 첫 분양 당시엔 3.3㎡당 90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미분양이 크게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규제 완화 이후 투기는 보다 활성화 됐고, 현재 타워팰리스 가격은 15억원이 넘습니다.
문제는 정부 고위직들의 부동산 자산도 강남에 몰려있다는 겁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지난 국정감사 당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부동산 관련 정책기관의 고위공무원은 46%가 강남3구에 주택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수록 그들에게는 더욱 이익이라는 점이죠. 정부는 시장을 이길수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강남아파트를 보유한 고위공무원들은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