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파업을 끝낸 가천대 길병원이 또 다시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이 병원 간호부를 중심으로 파업 참여자에 대한 노동탄압, 괴롭힘 행위가 폭로됐다. 파업에 참여한 간호사들이 수간호사 등 상급자로부터 노조 탈퇴를 강요받고, 따돌림 등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이다.
강수진 보건의료노조 길병원지부장(간호사)은 “파업 이후 부서장 면담에서 ‘부서가 없어질 수도 있다’, ‘전환배치 하겠다’는 식으로 노조 탈퇴 압박을 줬다는 같은 내용의 제보가 여럿 들어왔다. 조직적인 와해 시도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 지부장은 “인사를 받지 않거나 눈도 마주치지 않는 은근한 괴롭힘, 그리고 16시간 근무 시 시간외수당을 지급하는 단협조항을 악용해 식사시간도 주지 않고 15시 45분까지 근무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파업 이후에도 태움, 직장 내 괴롭힘 등 고착된 병원 조직 문화 쉽게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의료기관 내 갑질 논란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의료원의 고(故) 서지윤 간호사도 ‘직장 내 괴롭힘’이 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다.
간호사들은 이 같은 ‘갑질’이 일부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열악한 병원시스템과 간호사 태움 문화로 인한 문제가 대다수 병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행동하는 간호사회 소속 최원영 간호사는 “특정 병원만의 문제가 절대 아니다. 결국 인력부족에 기인한 것이라고 밖엔 달리 원인이 없다.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대상은 많은데 그걸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인력은 그에 못 미치게 주니까 적은 인력으로 어떻게든 해내려고 애쓰면서 온갖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우리 의료수준은 선진국수준이지만 간호인력은 충분치 않기 때문에 식사나 화장실에 가는 것같은 기본적인 것들도 포기하고 일할 때가 많다. 도돌이표같은 결론이지만 과도한 업무와 인력부족,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문제"라고 분석했다.
다만, 태움이나 직장 내 괴롭힘이 선후배 간호사 사이의 갈등이기도 한 만큼 세대 간 인식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선배 간호사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후배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높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관련 청원을 올린 한 간호사는 “선배로부터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나 때는 이보다 더 심했어’, ‘운 좋은 줄 알아’이다. 자기들도 태움을 당했으니 우리도 태워도 된다는 선배 간호사들이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침마다 출근해서 선배들 커피 타서 다 갖다 바치고 선배들 잡수실 간식도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사다 바친다. 대놓고 왕따를 당해 혼자 전전긍긍하며 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간호사 커뮤니티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 페이지’에서 한 간호사는 고(故) 서지윤 간호사 사건과 관련해 “태움의 간접적 원인은 병원 시스템이지만 직접적 원인은 태움 당사자들”이라며 간호계 선배들의 자성을 촉구했다.
한편, 가천대 길병원은 ‘병원 차원에서 압박을 넣은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병원 관계자는 “파업 기간 동안 간호사 인력 부족으로 업무가 과중하다는 문제가 가장 많이 지적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파업 후 병상 및 인력 재배치를 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빚어진 듯하다”며 “확인 결과 간호부 차원에서 노조탈퇴나 부당대우를 종용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