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장과 방송국에 있어야 할 팬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아이돌 그룹 운영에 대한 불만을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22일 오전 11시 서울 상암산로 CJ ENM 본사 앞에는 그룹 엑스원 팬 1000여명(주최 측 추산)이 모였습니다. ‘엑스원 새그룹 결성 지지 연합’이란 이름을 내건 이들은 검은 패딩과 마스크를 낀 채 팻말을 들고 약 3시간 동안 CJ ENM을 규탄하는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명확했습니다. 활동을 원하는 멤버들로 구성된 새로운 엑스원을 결성하는 것. 그러기 위해 31일까지 새 그룹 결성 의사를 표명하고 2월 7일까지 각 멤버들의 소속사 대표단 재회동을 진행하라는 구체적인 대안까지 내놨죠.
Mnet ‘프로듀스 X 101’에서 탄생한 엑스원(X1)은 조작 논란으로 결국 지난 6일 해체됐습니다. 팬들은 해체 결정이 멤버들의 소속사들의 손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멤버들이 그룹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자신들의 해체를 결정하는 회의에 참석하지도 못했다는 것이죠. 허민회 CJ ENM 대표이사가 지난달 30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엑스원 활동 지원 재개’를 약속했다는 점도 언급됐습니다. 연습생들을 모아 데뷔를 시키고, 팬들에게 투표를 부탁한 방송사가 자신들이 일으킨 심각한 문제에 대해 책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처음부터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팬들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던 배경입니다.
‘프로듀스 X’의 팬들이 행동을 보여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과거 조작 논란이 불거진 직후에도 자신들끼리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려 Mnet 소속 제작진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죠.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에게 득표수 오류를 제보한 것도 진상규명위원회였습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진실을 요구한 건 팬들이었습니다. 뒤늦게 문제를 인지한 Mnet은 내부 조사를 벌였고요.
19일에도 팬들의 시위가 열렸습니다. 서울 영동대로 SM타운 코엑스 아티움 앞에서 그룹 엑소 멤버인 첸의 탈퇴를 요구하는 팬 수십 명이 모였죠. 결혼과 2세 소식을 한 번에 전한 첸이 그룹에 남아있으면 안 된다는 의견을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에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팬들은 성명서를 통해 “엑소는 첸 개인의 이기적인 선택으로 9년간 쌓아 올린 위상에 극심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탈퇴와 잔류로 팬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전달한 것입니다.
그동안 팬들은 연예인의 소속사와 방송사의 의사 결정에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곤 했습니다. 회사의 결정에 불만이 있더라도 외부인으로서의 한계가 존재했죠. 하지만 최근 대중문화업계에서 팬들의 위상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소속사도 팬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팬들과 소통을 잘하는 그룹이 더 많은 인기를 얻기도 하죠. ‘프로듀스 101’ 시리즈는 팬들에게 프로듀싱 권한을 넘겨주며 직접 그룹 멤버 선정과 이름, 콘셉트, 곡 선정까지 결정하도록 했죠.
팬들의 거리 시위는 돌발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팬인 동시에 핵심 소비자층인 이들이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며 영향력을 미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무엇이 그들을 거리로 불러냈는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