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사과를 마지막으로 그룹 AOA 출신 배우 권민아의 SNS 계정이 닫혔습니다. AOA 활동 당시 한 멤버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폭로한 지난달 3일 이후 약 한 달 만의 일입니다.
폭로의 여파는 컸습니다. AOA 지민은 그룹을 탈퇴했고, 전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는 끝내 공식 사과를 했습니다. 설현을 비롯한 다른 AOA 멤버들이 방관자 논란에 휘말렸고요. 권민아는 최근 소속사와 한성호 대표를 만나 진심을 들었고, 지난 11일 “저로 인해 피해 입은 모든 분, 놀라셨을 많은 분께도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반성하며 열심히 치료받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처음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일처럼 권민아의 사연에 공감하고 안타까워하며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픔을 모르고 있었다는 충격과 죄책감은 빠르게 분노와 악의로 바뀌었습니다. 대중과 언론은 이 상황이 누구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집중했습니다. 권민아의 폭로글에 의존해 소속사와 AOA 멤버들에게 비난이 쏟아졌죠. 내부의 집안싸움이 전 국민에게 공개돼 심판받는 구도가 된 겁니다.
거리를 바꿔서 보면 다른 이야기가 보입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이번 일은 권민아의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받아온 고통과 말하지 못했던 스트레스가 내면에 쌓여 곪아간 끝에 폭발한 것이죠. 그에겐 하고 싶었던 말을 하는 것, 사과를 받는 것이 중요했을 겁니다. 그건 생존의 문제입니다. 자신의 뜻대로 여론이 움직이길 바라거나, 누군가 대신 욕해주길 바랐던 건 아니었을 거예요.
멀리서 보면 이번 일은 FNC엔터테인먼트와 AOA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책임을 아이돌 멤버 개인에게 돌리는 아이돌 산업에 내재돼 있던 근본적인 문제가 터져 나온 것이죠. 실제로 몇 년 전부터 수많은 아이돌이 정신적인 문제로 휴식기를 갖거나 탈퇴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같은 일이 여러 곳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면, 개인이나 회사의 개별적인 문제라기보단 아이돌 산업 구조의 문제라고 봐야겠죠. 한 명의 아티스트로 소속사와 동등한 입장에서 계약하고 지원을 받으며 활동하는 아이돌은 극소수입니다. 대부분은 연습생 시절엔 소속사의 선택을 받기 위해, 데뷔 후엔 소속사와의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많은 것을 참고 또 참길 강요당합니다. 아이돌의 꿈과 성공을 볼모 삼은 소속사는 그들이 상품을 자처하며 업계로 뛰어들게 만듭니다. 양쪽의 요구가 맞아떨어졌다고 하기엔 분명 기형적인 구조죠.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닐 겁니다. 앞으로도 권민아와 AOA, FNC엔터테인먼트의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이어질 거예요. 그 때마다 권민아의 폭로가 소환되고, 누군가 네티즌들의 악플 세례를 받겠죠. 비난의 타깃이 엉뚱한 곳을 향한다면, 새로운 피해자가 발생하고 다시 원인을 찾아 공격하는 일이 반복될 겁니다. 다른 그룹에서도, 다른 소속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죠. 이제 이번 일이 누군가의 돌발적이고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이 끔찍한 잔혹동화의 엔딩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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