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령 이용대(88), 빙벽 오르며 건재 확인
- 강인한 체력과 담력 요구, 성취감 커
- 등반자와 확보자가 함께하는 겨울 스포츠
단단하고 균형 잡힌 몸매의 청년이 청빙 (blue ice) 에 아이스스크류를 박고 줄로 연결해 안전을 확보하더니 이내 피켈(아이스툴)과 크램폰(아이젠)으로 번갈아 얼음을 찍으며 멋진 N바디 등반 자세로 거침없이 빙벽을 오른다. 어느새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빙벽 사이로 타고 흐르는 찬 겨울바람이 시원스럽기만 하다.
멀리 빙벽아래 안전줄을 잡고 있는 확보자를 비롯해 머리가 하얀 6,70대 후배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90세를 눈 앞에 둔 청년 등반가 이용대 씨는 빙벽 정상에 우뚝 서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지난 17일 강원도 양구군에 위치한 국내 최대의 빙벽장 중 한 곳인 용소빙벽장. 지난 시절 한국 등반을 대표했던 등반가들의 모임인 ‘시니어 알파인 클럽’회원 15명이 빙벽등반을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회원들은 뒷모습만 봐서는 도대체 나이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군살 하나 없는 몸매를 자랑한다. 어깨에 무거운 자일을 한 짐 메고 꼿꼿한 허리에는 무거운 빙벽장비를 가득 달았다.
용소빙벽장(용소아이스파크)은 서울양양고속도로타고 춘천을 지나 46번 국도로 갈아타고 백두대간 한계령, 진부령, 미시령을 향해 가다보면 양구군 국토정중앙면에서 원통 방향 31번 국도오른쪽에 위치한다.
빙벽은 기온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영하의 기온이 이어지고 한파주위보가 계속되면 단단해진 청빙은 아이스클라이머들을 불러 모은다. 빙벽등반의 난이도는 빙벽의 외관이나 빙질에 따라 등급이 달라진다. 너무 단단해도 물러도 등반이 힘들다. 하지만 동장군이 물러나기 전 한 번이라도 더 아이스피켈로 얼음벽에 치고 오르고 싶어 부지런히 이 곳 저 곳 빙장을 찾아다니느라 클라이머들에게 짧은 겨울은 바쁘기만하다.
기자가 방문한 17일 용소빙벽장은 밤새 물을 뿌려 얼려놓아 얼음상태가 좋아 보였다. 더군다나 기온도 0도를 오르내리고 있어 빙벽타기에는 최고의 날씨다. 하지만 아이스파크 입구에 들어서자 소란스럽다. 용소빙장의 토지 소유주인 김종우(72세· 광치령주유소 대표) 씨가 “빙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나오라”며 소리친다. 김 대표는 “빙벽등반은 한 겨울 추위에 맞서는 스포츠의 꽃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라며 “안전 수칙을 벗어난 행위가 보이면 즉각 조치를 취한다”고 말한다. 이날 소란은 등반자가 초반에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확보물 4개를 기본으로 설치해야 하는데 이걸 안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인솔자가 바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면 이날 빙장은 폐쇄될 뻔했다. 최근 몇 년간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 전국 빙벽장에서 사망사고가 여러 건 발생했었다.
용소빙장은 김종우 대표가 자신 소유의 토지와 연접한 국도를 따라 설악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십 수 년 전 사비로 얼음을 얼리기 시작했다. 재작년부터 클라이머에게 개방하면서 어느새 아이스클라이머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빙벽등반(ice climbing)은 암벽등반과는 인공적인 용구에 의존하는 등반이다. 빙벽등반에 쓰이는 장비는 빙벽화와 빙벽화에 착용하는 크램폰, 손으로 얼음을 찍는 아이스 툴, 아이스 스크류, 로프, 안전벨트, 헬멧, 카라비너(안전고리), 하강기 등이다. 이 밖에 여러 가지 용구들이 있다.
- 시니어 알파인 클럽은
이날 용소아이스파크를 찾은 세월을 잊은 클라이머들은 하나같이 특별하다.
2006년 창립한 시니어 알파인 클럽은 회원 수 35명, 평균나이 71세로 회원들의 나이를 모두 합하면 무려 2,489세에 이른다.
등반경력 65년, 문무를 겸비한 산악인으로 한국 현대 암벽등반사의 클래식으로 불리는 이용대(88) 전 코오롱등산학교장은 등산관련 서적 6권을 집필한 등산역사와 이론의 최고전문가이다. 산악인의 키다리아저씨로 알려진 조대행(80‧ 등산의학 전문가)의사는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1977년 한국 첫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의료담당 대원으로 참가해 대원들의 건강을 돌보고 당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던 현지인들을 진료하기도 했던 조대행 선생은 ‘팀 닥터’로서의 역할만이 아니라 스스로 짐을 지고 7천8백 미터까지 등반했던 알피니스트였다.
70년대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등반활동을 하였던 ‘악우회’의 핵심 멤버였던 윤대표(73) 산악인은 ‘대표’라는 이름답게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클라이머이다. 그는 ‘70년대에 국내 최초로 세계적으로 가장 어려운 알프스 3대 북벽인 아이거 북벽과 그랑조라스 북벽, 마터호른 북벽 등정 위업을 달성했다.
예순여덟(68세)에 1000m 거벽 오른 암벽 등반가 이충호(82)씨는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를 수료하고 에베레스트 실버원정대에 선발돼 히말라야에도 다녀왔다. 유동진(77) 회원은 알프스 아이거 북벽을 최고령으로 등정에 성공했다.
김상일(77) 씨는 전문등반 1세대로 중국 칭다오 노산지역 암반코스를 개척하고 중국에 한국의 등반기술 문화를 전수했다. 유승현(69) 산악인은 산악스키 전문가로 미국 서부 산악지역 4,300km를 6개월간 단독트레킹 종단했고 現 대한산액연맹 등산교육원장이다. 여성회원인 이능란(70) 씨는 알프스, 히말라야를 비롯해 국내 유명 암벽, 빙벽을 모두 등반한 열성 산악인이다.
왼쪽발목 복합골절 사고 후 재활에 성공한 이내응(69)씨는 빙벽등반의 묘미와 한국시니어알파인클럽 회원들을 소개하며 자랑으로 입이 귀에 걸린다. 회원의 첫 번째 조건은 인성입니다. 아무리 기술이 좋고 체력이 좋다 해도 팀워크를 위해 인성위주로 회원이 구성되었다고 소개한다. 산을 오르며 자연을 배우고 암벽을 오르며 한계에 도전해 온 산악인들이 나이 들어서도 계속 만날 수 있는 것은 서로가 믿고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한국 산악계의 전설이다. 회장을 맡고 있는 윤재학(74) 코오롱등산학교 교장은 2003년에 위암으로 위 전체를 절제하는 대수술을 이겨내고 암벽등반과 빙벽등반을 거뜬하게 소화한다.
윤 회장은 “아이스클라이밍이 매력만점의 겨울스포츠이긴 하지만 체력과 기술력, 정신력, 검증된 빙벽등반 장비 등 철저히 준비를 잘 해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면서 “특히 다양한 등반 장비를 사용하고 언제든 얼음이 깨질 수 있고 낙빙(落氷) 등 빙벽 등반은 맨손으로 오르는 암벽 등반보다 훨씬 위험하다. 무리해서 욕심을 내면 안 된다”고 말한다.
양구=글‧사진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