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역대급 위자료와 재산분할 결과가 나왔다. 향후 SK 경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가사2부(김시철 김옥곤 이동현 부장판사)는 30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사실상 노 관장의 손을 들어줬다. 1심과 달리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 분할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위자료와 재산 분할은 1심과 비교하면 약 20배가량 늘어났다.
이날 재판에서는 노 관장이 SK그룹 가치 증가와 경영 활동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판시됐다. 노 관장의 아버지인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금이 고 최종현 SK 선대회장과 SK그룹에 흘러 들어간 정황을 인정했다. 해당 자금이 SK그룹 성장의 종잣돈이 됐다고 본 것이다. 노 관장의 어머니인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 온 91년 선경건설 명의 약속 어음과 메모 등도 증거로 인증됐다.
재판부는 “지난 1991년 노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원고의 부친 최종현에게 상당한 자금이 유입됐다고 판단했다”며 “태평양 증권 인수 과정이나 SK 이동통신사업 진출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최종현에게 일종의 보호막·방패막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최 회장 측 변호인단은 상고를 통해 다시 다투겠다는 입장이다. 변호인단은 “이번 재판의 과정과 결론이 지나치게 편파적인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밝힌다”며 “아무런 증거도 없이 편견과 예단에 기반해 기업의 역사와 미래를 흔드는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 특히 ‘6공 비자금’ 유입 및 각종 유무형 혜택은 전혀 입증된 바 없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판결까지는 시간이 있지만 해당 판결이 확정될 경우, 최 회장은 천문학적 규모의 현금을 마련, 노 관장에게 지급해야 한다. 문제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다.
일각에서는 최 회장이 보유한 현금과 부동산 등을 처분하더라도 주식을 매각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을 내놨다. 최 회장은 SK그룹 관련해 약 2조500억원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SK 1297만주와 SK케미칼 6만7971주, SK디스커버리 2만1816주, SKT 303주 등이다. 특히 SK 계열사를 지배하는 SK 주식의 17.73%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다만 SK 지분을 매각할 경우, 그룹의 경영권이 흔들릴 위험이 있다. 지난 2003년 외국계 운용사인 소버린은 SK 지분의 14.99%까지 매입, SK의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이후 최 회장에게 퇴진 등을 요구했다. 정기 주주총회에서 최 회장이 승리하며 경영권을 방어, 소버린은 지분을 매각하고 떠났다.
양도소득세도 문제다. 대주주가 주식 양도로 인한 3억원 이상의 차익을 얻을 경우 27.5%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최 회장이 보유한 비상장 주식인 SK실트론의 지분 29.4%를 매각하는 방법도 거론되고 있다. 해당 지분 가치는 약 600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SK실트론은 SK그룹 경영권과 큰 상관이 없기에 이를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 역시도 양도소득세가 문제로 꼽힌다. 최 회장이 불리한 상황에서 좋은 가격에 매도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 회장이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는 시나리오도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다만 지난해 말 기준 SK 보유주식 59.2%를 담보로 4000억가량을 대출받았다. 추가로 조달받을 수 있는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재원 마련도 문제지만 기업 이미지 훼손이 가장 큰 타격이라고 봤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이혼소송’이라는 오너리스크로 인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재산분할로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오너리스크가 번지며 다시금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SK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게 된 것이 가장 안타까운 점”이라고 봤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최 회장이 기존 ‘ESG 전도사’, ‘사회공헌’ 등으로 좋은 이미지를 구축해 왔는데 부적절한 관계로 인한 이혼 소송으로 좋지 않은 이미지가 생기게 됐다”며 “사회적으로도 파장이 큰 판결이기에 그룹 이미지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