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이 조용한 퇴사 상태”…기업들, 유연화 자구책 나섰다 [생산성 처방④]

“절반이 조용한 퇴사 상태”…기업들, 유연화 자구책 나섰다 [생산성 처방④]

- '22년 시간당 노동생산성 OECD ‘하위권’…아일랜드 32.8% 수준
- 삼성·LG·SK·네카오, 근로시간 유연화 ‘처방’…노사 모두 긍정적
- ‘탄력근로’ 중소기업은 10%대…전문가 “생산성 위해 확산 필요”

기사승인 2024-08-01 06:00:09
편집자주
한국 산업의 생산성은 마이너스 대 진입 초읽기 중. 경영의 효율성은 떨어지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비전은 점차 멀어지고 있습니다. 노동자 고령화와 근로 방식 변화로 흔들리는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선결돼야 할 것들을 고민해 봤습니다.

서울 마포구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인근에서 직장인들이 출근길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쿠키뉴스 DB

“일을 빨리 끝낸다고 빨리 퇴근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괜히 다른 일만 더 생기죠. 시키는 일만 기한 맞춰하려고 해요. 어차피 ‘나인투식스’니까요”

직장인 2명 중 1명은 ‘조용한 퇴사’ 상태다.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지만 최소한의 업무만 처리하며 회사에 기여하려는 의지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시간만 보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절반가량인 상황에서 결과물이 좋을 리도 만무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까지. 낡은 근로 제도가 기업의 생산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근로시간 유연화에 따른 생산성 제고를 모색하고 있으나, 중소기업 등에서는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4 대한민국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 37개국 중 27위다. 가장 노동생산성이 높은 아일랜드의 32.8%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긴 시간 일하는 것에 비해 효율이 좋지 못하다는 뜻이다. 

삼성전자는 자율적이고 유연한 근무 문화를 위해 사외 거점 오피스와 사내 자율 근무존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 거점 오피스 ‘딜라이트 서초'(서울 서초구)에서 임직원들이 근무하는 모습. 삼성전자

낮은 노동생산성에 일부 대기업들은 근로시간 유연화라는 처방을 내놨다. 삼성과 LG, SK, 네이버, 카카오 등 일부 대기업에서는 선택근로제와 탄력근로제 등 다양한 제도를 노사 협의에 따라 적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카카오 등은 일부 직군에 한해 주 또는 월 단위의 법정기준 근로 시간을 채우는 탄력근로제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개발·마케팅·스텝 부서 등은 주 근로시간 40시간만 근무하면 된다. 목요일까지 몰아서 근무한 후, 금요일에 쉬는 것을 택하는 직원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삼성전자는 일부 DS부문과 MX사업부 등에서 주 64시간 특별연장근무를 도입하기도 했다. 반도체 부문 경쟁력 강화와 갤럭시 언팩 2024 준비 등을 위해 집중적인 근무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LG전자는 일부 직군에서 1개월 단위로 정해진 근무시간 범위 내에 구성원이 직접 근무 시작과 종료 시간을 결정하는 탄력근로제를 적용 중이다. 보통 월 160시간 범위에서 주중 자유롭게 근무한다. LG전자에서는 탄력근로제의 큰 틀 아래 본부마다 조금씩 더 유연하게 제도를 조정하고 있다. 회의나 협업 등을 위해 본부마다 ‘의무 근무시간’을 지정하는 곳도 있다. 

카카오는 선택근로제와 탄력근로제를 합친 ‘완전선택적근로제도’를 운영한다. 1개월 단위로 정해진 총 근무시간 범위 내에서 업무의 시작 및 종료시각, 하루 근무시간을 노동자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SKT 사옥. SKT

SK 일부 계열사와 포스코는 탄력근로제를 통해 사실상 ‘격주 주4일제’로 운영된다. 직원이 자율적으로 금요일에 휴식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회사 차원에서 격주 금요일마다 쉬도록 한 것이다. SKT와 SK하이닉스는 ‘해피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의 주4일 근무제도를 운영한다. SKT는 월 2회, SK하이닉스는 월 1회 금요일에 휴식을 취한다. 포스코도 노사 합의를 통해 세계 철강업계 최초로 격주 주4일제를 지난 1월부터 도입했다. 금요일 근무 시간을 나머지 평일에 배분해 하루 1시간씩 더 일하는 방식이다. 

네이버는 시간뿐 아니라 업무 공간도 유연한 근무제도를 택했다. 지난 2022년 7월부터 ‘커넥티드워크’ 제도를 시행 중이다. 월평균 주3회를 출근 또는 전면 원격근무를 택해 일한다. 원칙적으로 어디에서든 근무가 가능하다. 법정근로시간에 한해 근무 시간 또한 자유롭다. 

점심시간 청계천을 찾은 직장인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쿠키뉴스 DB

유연한 근무 환경에 대해 노사 모두 만족감이 높다. 기업 관계자는 “유연 근로에 대한 직원들의 만족감이 높다”며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기에 스트레스를 덜 받아 일에 대한 능률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탄력근무제를 적용받는 한 대기업 직원 A씨는 “유연근로제도 도입 전에는 매일 8시간씩 일하고 바쁜 날은 더 일을 해 총 근무시간이 길었다”면서 “도입 이후에는 근무시간이 주 40시간 수준에서 조정 가능해 일이 없는 날은 일찍 가거나 개인 용무를 보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이야기했다. 주말부부로 생활 중인 직장인 B씨(여)는 “월화수목에 좀 더 일하고 금요일에 일찍 퇴근해 남편과 시간을 보낸다”며 “업무 사이클에 맞춰 효율적으로 일하면서 개인사와도 양립이 가능해 심적 부담도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서 유연근로제의 혜택을 누리기는 어렵다. 지난 2022년 6월 기준, 10인 이상 30인 미만 기업 16만9710개 중 탄력근로제를 도입한 곳은 2만2293개(13.1%)에 그쳤다. 300인 이상 기업의 43.4%가 탄력근로제를 도입한 것과 비교하면 낮은 수치다. 

전문가는 국내 생산성 향상을 위해 유연근로제의 확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유연근로제는 생산성 향상은 물론 일과 가정의 양립, 노동력 확충을 위해서도 필요한 제도다. 더욱 확산이 필요하다”라며 “사람에게 ‘바이오리듬’이 있듯이 일에도 리듬이 있다. 일을 해야 할 때 바짝 하고 쉴 때는 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사업주는 물론 노동자가 반대해 정착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전날 2시간 더 일한 후, 다음 날에는 2시간 일찍 퇴근해야 하는데 ‘눈치’가 보여 퇴근할 수 없는 기업문화 탓도 크다”고 꼬집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이소연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