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리가 크니까 저도 그렇고, 안내견도 깜짝 놀라요. 사람도 워낙 많으니까 이동이 어려워요”
시각장애인 김모(40대·남)씨가 의지할 곳은 하네스로 이어진 안내견 ‘공기’뿐이다. 그들에게 익숙했던 출퇴근길은 어느새 낯선 땅이 됐다. 19일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은 ‘탄핵 각하’ 구호부터 북, 확성기 등의 소음으로 가득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안국역 일대를 지나는 시각장애인의 보행권이 침해받고 있다. 김씨와 인근 거리를 잠깐 동행하는 사이에도 고난의 연속은 계속됐다. 시위자들이 흔드는 태극기 깃발과 봉도 시각장애인들에게 장애물로 작용했다.
헌재 정문 방향 인도의 양쪽에는 지난 17일부터 투명 차단벽이 설치됐다. 해당 인도로는 일반인의 통행이 불가하다. 수십 대의 경찰 기동대 버스는 안국역부터 헌재를 넘어서까지 배치됐다. 요새를 방불케 하듯 주변 골목 깊은 곳까지 차벽이 세워졌다.
이날 만난 저시력 시각장애인 김모(30대·여)씨는 “(시각장애인들은) 늘 다니던 길로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다”라며 “길을 찾기 위해 특정 위치에 있는 벽을 짚거나 주변 소리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도로 상황이 갑자기 변할 때는 한 걸음 나아가기도 어렵다”고 호소했다.
연일 열리는 집회는 그들의 일상을 위협했다. 김씨는 “(나는) 저시력 시각장애인이라 어느 정도 눈으로 보고 걸어다닐 수 있지만, 전맹 시각장애인들에게는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다”고 우려했다. 전맹 시각장애인은 작은 빛도 감지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다.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집회 구역 등을 지날 때 활동지원사와 동행할 것을 권고했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의 자유권이 우선이냐를 논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집회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동행하거나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는 것이 오히려 시각장애인과 시위자 모두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찰은 선고 당일 헌재 주변 100m 구간을 ‘진공 상태’로 만들 방침이다. 선고 당일 과격 시위로 변질되는 것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사회적 혼란 최소화를 위해 이날 ‘갑호비상’을 발령해 경찰력은 100% 동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