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초등학교 1·2학년 ‘즐거운 생활’에서 체육 부분을 별도의 교과로 분리하는 교육과정 개정 절차에 착수한다. 체육 교과가 음악, 미술 교과와 수업시수가 통합돼 통합교과로 운영된 지 약 40년 만이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선 “현장 교사 목소리를 무시했다” “음악·미술 교육 분리도 필요하다” 등의 목소리가 쏟아지며 반발이 거세지는 모습이다.
27일 교육계에 따르면 국교위는 초등 1·2학년의 신체활동 관련 교과를 신설하기로 국가교육과정을 변경한다고 전날 밝혔다. 올해 초등 1, 2학년과 내년 중1·고1부터 적용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 변경은 교육부가 요청한 사안이다. 코로나19 유행으로 비대면 수업이 이어진 이후 학생들의 체력 저하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하면서 신체활동을 증진해야 하는 목소리가 이어진 데 따른 것이다.
국교위 의결 내용에 따르면 교육당국은 초등 1·2학년 대상 통합교과 ‘즐거운 생활’에서 신체활동을 분리해 통합교과를 신설한다. 기존 즐거운 생활의 음악과 미술 관련 교육목표와 성취기준을 강화하는 통합교과로 개정을 추진한다. 1982년 4차 교육과정 당시 체육 음악, 미술 교과는 따로 분리돼 있었지만 수업시수가 통합돼 사실상 통합 교과처럼 운영됐다. 5차 교육과정에 적용된 1989년부터는 체육 교과가 즐거운 생활과 통합됐다. 이날 체육 교과 분리 시 안전교육 시수 16시간을 포함하겠다는 내용은 논의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회적 합의기구라더니 거수기…현장 파악부터”
초등 1·2학년 체육 교과 분리는 전날 4시간에 걸친 논의 끝에 회의 참석한 위원 17명 중 9명의 찬성 표결로 결정됐다. 그러나 야권 성향의 위원들은 모두 반대(2명)하거나 기권(2명), 불참(4명)해 추후 개정 과정에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교위 내 야권 성향 위원 5명은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위원 4명이 결원 상태인데다 교원 위원이 1명도 없는 조건에서 교육현장에 대한 아무런 정보와 판단도 없이 17명이 참석해 찬반 표결 방식으로 진행을 결정한 것은 사회적 합의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의 취지와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교위는 즐거운 생활에서 신체활동을 분리하는 작업을 중단하고 현장 파악과 의견수렴부터 다시 시작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했다.
한 위원도 쿠키뉴스에 “사회적 합의 기구라는 것은 어떻게든 다수결로 하지 않고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라며 “(교육부 지향적인 입장으로 국교위) 운동장이 기울어진 상황에서 표결에 맡겼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현장 교사 반발…교육과정 개정 과정 ‘진통 예상’
교육 현장 반발도 거세다. 초등교사노동조합은 “현장교사 의견을 무시한 일방적인 초등 1·2 체육 교과 분리 개정 의결은 국교위의 존립의미 부정”이라며 유감 뜻을 밝혔다. 이들 단체는 설문조사에서 응답 교사의 81%가 체육 활동에 공간상 제약이 있다고 답했다면서, “교육과정 개정 논의보다 학교 현장에 체육활동 공간 마련과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교육 주체들의 충분한 논의와 합의 없이 국가교육과정을 변경하는 것을 멈추라며 촉구했다.
특히 올해 초등학교에 막 적용을 시작한 교육과정을 다시 바꾸는 것은 학교 현장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지난 2022년 12월 고시돼, 초등학교 1·2학년에는 올해 처음 도입됐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입장문을 내고 “교육부의 제안 취지에 공감하다”면서도 “2022 개정교육과정은 교육계의 오랜 협의와 대국민 공청회를 거쳐 확정됐다. 목적이 옳고 타당하더라도 그 과정이 절차적 합리성을 지니지 못한다면 따르기 어렵다”고 했다.
“체육 분리, ‘즐거운 생활’ 문제 자인한 것”
체육과 마찬가지로 음악·미술 분리 필요성을 강조해 온 한국 음악교육·미술교육 공동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역시 우려를 내비쳤다. 체육 교과 분리와 함께 음악·미술 교과를 강화한다는 발표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모호한 표현에 ‘말뿐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최진호 중앙대 예술대학 음악학부 부교수(한국음악교육학회 수석부회장)는 “체육교과를 분리하면서 음악·미술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명시한 것 자체가 국교위 스스로 통합교과인 ‘즐거운 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라며 “체육 교과는 분리하라면서 음악, 미술은 남아 강화하라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이렇게 강화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체육 교과도 분리하지 않고 음·미·체 모두 (통합교과로)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류지영 춘천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제16대 한국미술교육학회장)도 “체육 교육을 조금 하다가 또 음악교육을 하는 식의 교육이 통합교육이라고 보는 것은 근시안적”이라며 “창의적이고 가소성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학습의 시작 단계에서 예술을 통한 무한한 즐거움과 큰 세계를 가르칠 수 있다. 책상에서만 음미체를 다루는 즐거운 생활은 (아이들에게) 공부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음악, 미술 교과 강화를 위해선 ‘교과 분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각 교과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음악, 미술 교육 전문가와 교과 전담 현장 교사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아이들의 음악적 발달과 정서적 능력 함양에 도움을 주는 효과적인 교육을 시켜야 한다”며 “한국에는 훌륭한 교육 전문가와 교사들이 많다. 이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만들면 음악교육은 자연히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