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한 의료기기업체는 문 닫으라는 거냐?”

“영세한 의료기기업체는 문 닫으라는 거냐?”

기사승인 2014-04-13 11:46:00
식약처 규제개혁 발표, 업계 “규제 오히려 늘어나” 불만 토로

[쿠키 건강]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추진하는 규제개혁안을 두고 의료기기업계는 오히려 규제가 늘어났다는 지적이다. 영세한 의료기기업체들은 아예 사업을 하지말라는 것과 다름없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식약처 의료기기안전국은 지난 11일 서울식약처에서 ‘의료기기분야 규제개혁 과제 발굴을 위한 2차 토론회’를 개최하고 업계 의견을 수렴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의료기기안전국 김영균 국장을 비롯해 의료기기정책과 설효찬 과장, 의료기기심사부 정희교 부장, 의료기기안전관리과 홍충만 과장 등 식약처 정책입안자가 대거 참석했다.

지난 3월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규제개혁 필요성을 강조한 이후 식약처도 국민보건 안전에 피해가 없는 불필요한 규제를 선택해 개선하기로 정했다. 의료기기위원회를 통해 68개 과제를 선정했고, 지난주 1차 토론회를 토대로 발굴과제와 검토를 마친 다음 현장의 의견을 공유하는 과정 중이다.

구체적인 규제개혁을 보면, 1·2등급 의료기기는 공공기관 인증제를 도입한다. 2등급 의료기기를 식약처가 지정한 공공기관인 ‘의료기기 정보기술지원센터’에서 신고 또는 인증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기로 한 것이다.

의료기기 임상시험 이중승인도 완화된다. 위해도가 낮은 임상시험은 식약처와 임상시험기관의 이중승인을 받지 않도록 개선한다. 체외진단용시약 허가심사 간소화를 위해서는 동등품목비교를 통한 등급별 자료 제출을 차별화하기 위해 시행 규칙 개정 후 허가 고시를 개정하기로 했다.

치과재료의 생물학적 시험에 대한 업계 애로도 해소하기로 했다. 무조건적으로 자료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면제 품목을 분명히 정해 불합리한 시험을 조정하기로 했다.

이중규제 해소도 추진된다.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치료장치는 원자력 안전법에 따라 식약처와 동일한 규제를 중복 운영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관계부처와 협의할 예정이다.

동물용 의료기기는 사람에게 사용하도록 허가받은 제품이라면 동물시험이 면제되도록 농림부와 논의하게 된다. 혈압계, 체온계 등도 기술표준원 형식도 별도로 따라야 하는 만큼 이중규제로 뒀다. 체외진단시약도 물질안전보건법으로 고용노동부와 이중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대신 안전성 강화를 위해 단계적으로 임상시험자료 제출 의무제가 시행된다. 아직 임상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품목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의료기기산업협회 등을 통해 의견을 취합한다. 7월부터는 품질책임자 의무고용을 시행해 품질관리를 전담할 인력을 별도로 두기로 했다.

◇업계 민원 성토의 장…“규제 줄인다더니 늘어난다”

이날 의료기기업계는 규제가 오히려 늘어났다며 토론 시간을 민원 성토의 장으로 채웠다.

한 업체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우리나라 GMP가 외국에서 인정받는 것은 아니며, 별도의 해외 인증을 또 받아야 한다.
수출을 준비하면서 우리나라 허가 자체에 많은 시간, 비용이 낭비된다”고 토로했다.

임상시험 강화 등에도 불만이 쏟아졌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규제를 해소한다면서 기존에 해왔던 개선안 외에 구체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없고, 오히려 임상시험 자료 제출 의무, 품질책임자 의무 고용 등만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또한 외국에서는 임상시험이나
허가심사를 진행할 때 규제당국과 업체가
함께 필요한 영역을 논의하는 것과는 다른 식약처의 일방적인 태도도 지적됐다. 식약처 산하 의료기기정보기술센터에 인증사업을 쪼개주고 덩치를 키우려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 업체 관계자는 “업계 간담회를 하면 매번 업계 편의를 제공한다거나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별도로 평가받는 품목을 한정한다고 하면서 뒤늦게 심사가 강화되는 일이 반복된다”며 “심지어 할 일이 없다고 지적된 의료기기정보기술센터에 예산, 인력을 할당하는 부처키우기 업무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이날 토론회에서는 의료기기심사부와 의료기기정책과의 의견이 충돌하는 모습이 그대로 노출됐다. 제도를 개선하고 최종 허가와 심사를 맡는 부서가 다르고, 이들 부서간 소통이 부족한 탓이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정책과가 규정을 만들고 최종허가를 내주는데 심사는 심사부가 맡는다. 서로 눈치를 보느라 민원인 앞에서 서로가 잘못이라고 말했다”며 “두 부서 간 알력싸움에 업체들만 힘들다”고 한숨 지었다.

또한 근본적인 문제인 영세한 기업이 많은 의료기기산업의 현실적인 문제도 제기됐다. 당장 사장도 전국으로 영업을 다녀야 하는 소기업에서는 각종 교육을 받고 규제를 따르거나 인증을 받고 회의에 참석하려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다.

7월부터 시행되는 품질책임자 의무고용이 실시되면, 사장 본인이 직접 품질책임자가 되고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웃지못할 하소연도 나왔다.

업체들은 “싱가포르에는 다국적기업들의 집중 투자를 받는 반면, 우리나라에는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과도한 규제 때문”이라며 “삼성전자가 갖은 의혹을 받으면서도 갤럭시S5 심박센서 등을 의료기기 허가품목에서 제외시키는 노력을 한 이유가 십분 이해간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 / 메디칼업저버 임솔 기자 slim@monews.co.kr
송병기 기자
slim@monews.co.kr
송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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