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학계·산업계 의료기기 개발 의지…“그러나 아직 갈 길 멀다”
[쿠키 건강] “우리나라는 최고의 연구지원 시스템과 최고의 의료보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두 개가 결합해 최악의 연구개발 환경을 만들고 있다.”
25일 ‘의료기기 R&D의 산업화 촉진방안’ 주제로 열린 ‘제8회 서울대병원 의료기기임상시험 심포지엄’에서는 정부, 학계, 산업계 등이 한 자리에 모여 경쟁력있는 국산 의료기기 개발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보건복지부 이석규 보건산업진흥과장은 “보건산업진흥과는 제약, 의료기기, 화장품산업을 맡고 있다”라며 “보건복지만을 해오다가 이번 정부에서 사회적 서비스 영역에서의 일자리 창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만큼 정부의 열의는 크다. 각종 의료기기 규제개혁을 위해 정부부처장관회의를 거쳤으며, 2020년 세계 7대 의료기기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도 내세웠다.
화장품 회사는 글로벌 100대 기업에 우리나라 기업이 3개가 있지만, 의료기기는 전무하다. 이에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전세계적으로도 성공적인 기업이 나오길 기대했다.
이를 위해 복지부 보건산업 연구개발(R&D)에 260억원이 할당돼 있고, 신기술 개발과 시장 진입을 지원할 계획이다. 빅5병원에서도 국산 의료기기를 많이 사용할 수 있도록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고 독려했다.
이 과장은 “융복합 의료기기를 확대하는 과정이고, 성장주력산업이기 때문에 삼성 등 대기업도 뛰어들었다고 본다”며 “임상시험센터 지원이나 식약처와 보건의료연구원의 신의료기술평가 절차 간소화, 공정하고 투명한 유통질서 확립, 지식재산권 분쟁 체제 지원 등을 맡아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 오승준 임상시험센터장(비뇨기과)은 “임상진료 현장과 첨단의료기기는 뗄 수 없다. 공학이 발전할수록 의료기기 수요가 무궁무진할 것이다. 국가적으로도 대비해 국부창출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며 “의료기기 개발에 대한 원내 연구진의 높은 관심을 바탕으로, 학계, 정부, 산업계가 자주 함께 모여 의논하자”고 밝혔다.
방영주 의생명공학연구원장(혈액종양내과)은 “의료기기없이 진단과 치료가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비싼 의료기기만 수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세계 첨단의 IT, 전기전자, 기계 공학기술을 가지고 있고, 세계적인 의료수준을 가지고 있는 만큼 전세계에서 사용하는 의료기기를 개발하자”고 당부했다.
이날 끝까지 자리를 함께한 국회 오제세 보건복지위원장도 “의료기기, 제약 등 우리나라가 보건의료산업에서 세계에서 선두그룹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란다”며 “IT나 자동차에서 성과를 내는 것처럼, 아직도 가야할 길이 너무 멀다. 우수한 인재가 몰리는 의료산업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기대를 아끼지 않았다.
◇기대는 많지만 실상은 딴판? 흩어진 예산 등 첩첩산중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의료기기 연구개발, 사업을 오래 해왔던 이들은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우선 잘못된 보험수가 정책이 산업도 죽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정부 부처 간
R&D 예산이 너무 흩어져 있고 하나로 모을 수 없어 ‘히트상품’을 만들 수 없다는 아쉬움도 토로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송인금 회장(인성메디칼 대표)은 “부족한 보험재정 근본을 뜯어고칠 생각은 없이 누더기로 고치다 보니 답답한 것이 너무 많다. 병원이 장례식장, 주차장 수익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의술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병원의 적자로 구매력이 떨어져 덩달아 사장되는 좋은 기술과 제품이 너무 많다”고 비판했다.
또한 R&D 지원이 흩어져 있는 만큼 필요한 곳에 적절히 합쳐질 수 있으면 훨씬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제언도 뒤따랐다.
한 업체 관계자는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복지부 등에 R&D 예산이 조각조각 흩어져 있고, 이들 담당 공무원이 2년마다 바뀌면서 연속성이 없다"며 "정부에서도 정권에 따라 3년 정도만 지원이 이뤄진다.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한 의료산업에서의 경쟁력있는 제품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라고 토로했다.
의료기기 개발을 위해 서울의대 교수에서 서울공대 교수로 변신한 이색 이력의 소유자인 서종모 교수는 “인공눈 개발을 위해 14년 동안 연구를 하고 있지만, 연속성있는 연구 지원을 이끌어나가기 쉽지 않다”며 “의료기기는 즉각적인 기능 개선이 필요하지만 매번 IRB위원회 등의 승인이 힘들다. 다 만들어놓고도 특허, 실용신안 등 걸리는 문제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의학과 공학 간 지식의 간극도 너무 크다.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다 보니 빠른 판단을 위해 아예 공학을 배우게 된 수준에 이른 것. 무엇보다 시장성만 가지고 판단하면 실제 사용자인 의사의 입장에서는 먼 이야기가 된다. 시장 판단과 의학적 판단은 전혀 다르고, 시장성만을 고려한 의료기기는 오히려 사장될 수 있는 탓이다.
의대 교수 입장에서도 뚜렷한 동기부여가 부족하다. 서종모 교수는 “의료기기 연구 심사를 받을 때 기초단계 연구에서는 자꾸 특허를 요구한다. 또한 특허 단계 연구인데 논문 발표가 없다고 지적한다”며 “다수의 후보군 중 하나를 제대로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일관성있게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산업부 산하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허영 의료기기PD는 “중복성에 대한 비판이 있더라도 강점이 있는 연구 영역을 계속 개발한 수 있도록 지원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며 "제약은 개발주기가 15년, 의료기기는 7~8년이 걸리는 패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 역시 새로운 프로그램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오제세 위원장은 “의료기기 분야의 연구비는 미래부가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복지부는 최근에서야 보건산업에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 미래부의 대학 연구, 산업부는 산업체 지원, 복지부는 보건의료 지원 등 서로 합쳐지는 논의 체제가 마련돼야 하고, 병원과 대학, 기업과 정부가 한데 모여 나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 / 메디칼업저버 임솔 기자 slim@mo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