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조현우 기자] # 서울 마포에서 근무하는 여성 A(26세) 씨는 최근 직장 상사로부터 ‘너는 타이트한 옷을 입어도 섹시하지가 않다’면서 자리에 없는 다른 동료인 B 씨를 예를 들며 “B 씨처럼 몸매가 좋아야 옷태가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A 씨는 사내 신고센터에 성희롱 피해 접수를 하려다가 그만뒀다. 과거 몇몇 동료들이 비슷한 일로 피해사례를 접수했지만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신고했던 동료는 비밀이 지켜지지 않아 눈총 아닌 눈총을 받아야했다.
정부가 성범죄를 4대악으로 규정하고 근절대책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하루 평균 4명이 ‘갑’에 의해 성범죄 피해를 입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경찰청이 지난해 9월 1일부터 12월 9일까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 성범죄 특별 단속’ 결과 100일간 총 444건이 적발되고 507명이 형사 입건됐다.
전체의 84.2%인 374건이 직장 내 상사에 의한 성범죄로 나타났다. 신고 되지 않은 범죄의 경우 통계로 잡히지 않는 ‘암수’가 87.5%인 점을 반영했을 경우 실제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는 세 배 이상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10명 중 8명은 피해를 당했을 때 특별한 대처를 하지 않았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5년 성희롱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성범죄 피해자 중 78.4%는 피해를 입고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넘어갔다. 이 중 50.6%는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 될 것 같지 않아서’라고 응답했다.
실제로 성범죄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상급자인 경우가 39.8%로 가장 많았다. 대체로 여성을 대상으로 남성 상급자에 의해 피해가 발생한다는 통념이 수치화된 셈이다.
직급에 따른 편차도 보였다. 일반직원이 피해를 입은 경우는 6.9%로 관리직 4.6%보다 50% 이상 높았으며 비정규직 역시 8.4%로 정규직 6.2% 보다 35% 이상 성범죄에 더 노출돼있었다. 성(性)적, 지위적 상관관계에 따른 피해의 차이를 보인 셈이다.
성희롱 피해자만 직장을 그만 둔 경우도 9.9%나 됐다. 성희롱 사건 후 가해자가 직장을 그만 둔 경우는 24.3%에 불과했으며 둘 다 그만 둔 경우도 11%나 됐다.
직장 내 상사에 의한 성범죄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16년 상담통계 및 상담 동향분석’에 따르면 2014년 300건(20.8%)였던 직장 내 성범죄는 2015년 336건(25.7%), 2016년 368건(27.2%)로 늘었다.
지위 등을 이용한 직장 내 ‘갑질’ 성범죄가 늘어나는 것은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권력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관계자는 “사회적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의 경우 권력구조에 의한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으로 피해사실을 공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상급자 혹은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문제 자체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거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개개인의 변화와 더불어 조직차원의 인식 환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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