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윤민섭 기자] 한 e스포츠 대회가 있다. 이제 막 8강전이 열리는데 참가 팀 중 두 팀이 해체했다.
대회 규모는 결코 작지 않다. 매주 2회 국내 최대 게임 방송사를 통해 생중계되며, 시즌마다 해외 유명 팀을 초청한다. 우승 상금은 1억 원, 총 상금은 2억5000만 원에 이른다. 대회 이름은 오버워치 APEX다.
BK 스타즈가 지난 5일 해체를 선언했다. 시즌1부터 꾸준히 APEX에 출전했던 선수들은 “각자에게 더 나은 길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를 택했다.
라이노스 게이밍 윙즈는 지난 13일 소셜 미디어를 통해 해체를 발표했다. 애당초 형제팀 체제로 운영되던 이 게임단은 지난 3월 팀 통합을 결정했고, 3개월이 지난 뒤 완전 해체에 이르렀다.
누구를 탓해야 할까. 스폰서를 손가락질할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언급된 팀 소속의 한 선수는 과거 인터뷰에서 “반드시 게임단주에게 고마움을 표했다고 언급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BK 스타즈는 아프리카에서 방송 자키로 활동중인 김보겸 씨가 게임단주였고, 라이노스 게이밍은 제스트 전자와 비엠비 파트너가 힘을 합쳐 창단했다. 두 팀 모두 자금력이 탄탄하다고 볼 수는 없다.
성적이 부진하고 홍보효과도 미미하다면 게임단 투자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 스폰서는 자선 사업가가 아니다.
이대로라면 APEX를 비롯한 한국의 오버워치 e스포츠 리그는 ‘셀링 리그’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팀의 핵심 선수가 시즌 도중 급작스레 이적할 정도로 한국 내 오버워치 e스포츠의 시장규모는 작고 법적인 체계도 미약하다.
이미 BK 스타즈의 ‘카르페’ 이재혁이나 라이노스 게이밍의 ‘엔비’ 이강재는 북미 이적 절차를 밟았다. 해체 팀은 아니지만 마이티 AOD 소속의 ‘카리브’ 박영서나 ‘페이트’ 구판승 역시 최근 북미 진출이 확정됐다.
이 참담한 상황에 대한 문책은 우선적으로 종목사에게 돌아가야 한다. 최근 다시 한 번 오버워치 e스포츠에 대한 원대한 야망을 천명한 블리자드다. 이들에겐 불모지에 뛰어든 1세대 선수들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지지부진한 공식 리그 출범의 청사진을 공개할 수 있어야 하며, 프로 선수들과 팬들에게 오버워치 e스포츠가 충분히 자생할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줘야 한다. 이것이 블리자드가 종목사로서 져야 할 최소한의 과제다.
리그 오브 레전드를 운영하는 라이엇 게임즈는 지난 2014년 최저 연봉제를 도입, 선수들에게 최소 연 2000만 원의 수익을 보장했다. 이들이 자사 게임의 e스포츠 시장 활성화를 위해 얼마 만큼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두 종목의 시장 규모가 다른 만큼 절대값을 들이미는 단순 비교는 무의미하다. 하지만 성의가 다르다. 지난 1년간 블리자드가 오버워치 e스포츠판의 저변 확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들은 바가 없다. 그저 ‘본사탓’ 하기에 급급하다.
오버워치는 e스포츠로서 경쟁력이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블리자드가 종목사로서의 권리만 주장하고 팀 해체와 같은 문제에 손 놓고 있으면 결코 미래를 그릴 수 없다. 이들에게 e스포츠 종주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찾아볼 수 없다. 이대로라면 거위는 황금알을 낳기 전에 아사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