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윤민섭 기자] “요즘 나를 싫어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페이커’ 이상혁의 말이다. 지난 20일 진에어전을 2대0 승리로 마친 그는 팬들에게 “관용을 갖고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지난 2013년 데뷔한 이상혁은 이후 4년 동안 안티 팬과 관련해 별다른 코멘트를 남기지 않았다. 그랬던 이상혁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는 건 최근 그에게 가해지는 비난이 도를 넘어섰다는 의미다.
이상혁은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잘할 땐 ‘우리혁’ ‘세체미’ ‘센빠이’지만 평범한 활약을 하면 ‘한물간’ ‘느그혁’ ‘퇴이커’가 된다. 부진한 날엔 더욱 강도 높은 악플이 이어진다. 그게 수년째 계속돼왔다.
이상혁 혼자서 감내하는 괴로움이 아니다. 대부분의 프로 게이머들이 무차별적인 비난, 도를 넘은 인신공격에 시달린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불과한 젊은이들이 감당하기엔 벅찬 욕설이 필터링 없이 전달된다.
일부 선수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한다. 지난 스프링 시즌 심한 부침을 겪었던 한 선수는 그때를 회상하며 “너무 힘들었기에 당시의 기억이 없을 정도”라고 고백했다. 그는 일주일간 4번의 심리 치료를 받았다.
과열된 팬 문화는 오버워치에도 뻗쳐 있다. 루나틱 하이에서 DPS를 담당하는 ‘에스카’ 김인재의 부진을 놓고 팬들 사이에 왈가왈부가 이어진다.
김인재의 올 시즌 활약은 분명 예전만 못하다. 옵저버에 잡힌 움직임과 게임 지표, 그리고 팀의 성적이 그의 부진을 대변한다. 육두문자부터 은퇴 종용까지 오만가지 조롱이 그에게 가해진다.
그 비난은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하는가. 악플은 김인재를 전성기 기량으로 돌려놓는 자양분이 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혹은 김인재가 벤치로 물러나거나, 은퇴를 선언한다면 그 병든 언어들도 사그라질까. 역시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선수 또는 팀, 혹은 단체를 향한 비판은 프로 스포츠 팬의 권리다. 부진을 문책하는 것은 팬의 역할이다. 선수가 타 종목에 심취해 나태해졌다면 화를 낼 자격도 있다.
다만 정도를 넘어서는 순간 그것은 인신공격이 될 뿐이다. 권리는 보다 나은, 건강한 프로 스포츠씬을 구축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느그혁’과 ‘유사딜러’는 e스포츠씬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선수들의 위상은 높아져만 가는데 팬들은 십수 년째 같은 실수를 답습한다. 비난보다는 격려를, 조롱보다는 환호를 보내줄 수 있는 성숙한 팬 문화 조성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