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쩍 않는 우유가격, 원인은… “원유가격이 문제 VS 유통마진이 문제”

꿈쩍 않는 우유가격, 원인은… “원유가격이 문제 VS 유통마진이 문제”

기사승인 2017-09-19 05:00:00

수 년 간 원유가격연동제를 둘러싸고 계속돼온 생산자와 수요자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낙농진흥회가 원유가격에서 소비자물가상승률을 제외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통과시키자 생산자 측은 ‘날치기 통과’라며 민사 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정 다툼을 예고하고 있다.

◇ 논란의 시작 ‘원유가격연동제’

원유가격연동제는 유업체와 낙농가의 마찰을 막고 낙농가 수익 안정과 보호를 위해 2013년 정부가 도입한 가격정책제도다. 이에 따라 원유가격은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원유생산비를 고려해 기본가격을 책정한다. 여기에 체세포수·세균수 등 등급에 따라 가격이 차등 추가된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대로 올해 원유 가격은 지난해와 동일한 ℓ당 922원으로 동결됐다.

원유가격은 시장상황과 무관하게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 이상일 경우 우유생산비 등을 감안해 인상할 수 인상할 수 있으며 반대로 3% 이내일 경우 변동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간 넘치는 재고에도 유제품가격을 인하할 수 없는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실제로 원유가격연동제 시행 전 2013년 8월까지 2360원대였던 흰 우유 평균 가격은 시행 직후인 10월 2572원으로 2개월 만에 214원이나 올랐다.

원유가격이 오르자 원유 생산량도 따라 올랐다. 낙농진흥회 원유생산통계에 따르면 원유가격연동제 시작년도인 2013년 209만3073톤이었던 원유 생산량은 다음 해인 2014년 221만4039톤으로 늘었다가 지난해에야 206만9581톤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잉여원유가 넘쳐 생산한 원유를 처리할 수 없게되자 낙농가가 젖소도태 등 극약처방을 통해 수급을 조절했기 때문이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전국기준 총 생산량도 122만1680만톤으로 지난해 같은기간 122만6757톤보다 0.41% 감소했다.

문제는 이월 되는 잉여비축분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원유가격연동제가 시행되기 직전인 2012년 1만8467톤에 불과했던 전기이월분은 2013년 9만1735톤, 2014년 9만2667톤, 2015년 23만2572톤에 이어 지난해 25만2762톤으로 늘어났다.

원유가격연동제 시행 이후 5년만에 127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국내 원유 생산량은 22.0% 늘어나는 수준에 그쳤다. 소비되는 양이 생산량을 쫓아가지 못해 누적되는 이월물량이 늘어난 것이다. 전기이월 잉여비축분의 경우 치즈, 아이스크림 등 상대적으로 보관기관이 긴 2차가공품으로 포괄 적용돼 원유만으로 한정지을 수는 없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소비가 따라가지 못하는 셈이다.

◇ 표류하는 ‘전국단위 쿼터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생산자 중심의 ‘전국단위 쿼터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유업체와 낙농가의 대립으로 표류하고 있다. 전국단위 쿼터제는 정상가격대로 납유할 수 있는 ‘기본쿼터’를 전국단위로 묶어 상황에 따라 조절하는 제도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단위 쿼터제를 시행할 경우 낙농가 수취금액도 늘어나게 된다. 현재 과잉수급 등의 이유로 ‘마이너스쿼터제’를 통해 약 96% 수준인 203만톤까지만 유업체로부터 정상가격을 받고 가공유는 6만톤까지 정부로부터 정상가격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국단위쿼터제 도입으로 마이너스쿼터제가 해제될 경우 낙농가의 총 수취금액은 2조1966억원으로 현재보다 약 200억원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유업체는 전국쿼터제가 과도한 원유수급을 막을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유업계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원유 수급의 근본적인 원인은 가격”이라면서 “원유가격이 높아 생산량은 늘어나지만 소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국단위 쿼터제는 우선적으로 원유가격에 대한 선 조정 이후에 논의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 “원유가격이 문제 VS 유통마진이 문제”

이러한 문제가 계속되자 낙농진흥회는 지난해 6월부터 유업체, 소비자, 정부, 생산자 대표가 포함된 ‘낙농산업 문제점 발굴 및 대책마련 호위원회’를 구성하고 원유가격연동제 개정을 논의했으나 접점을 찾지 못했다.

유업체·소비자·정부는 원유가격을 산정하는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원유기본가격은 ‘기준원가’와 ‘변동원가’의 합으로 결정된다. 기준원가는 전년도 우유 생산비 증감분이 적용되며 변동원가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등이 적용된다. 사료값, 인건비, 전기세 등이 기준원가에 포함되는데도 변동원가에 다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적용돼 이중으로 반영된다는 지적이다.

반대로 생산자 측은 현재 원유가격연동제는 정부·생산자·수요자의 협의로 통해 완성된만큼 일방적인 개정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현재 우유가격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한국낙농육우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우유 가격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율은 42.7%로 일본 49.4%, 영국 49.3%에 비해 낮다. 이 자료에서 한국낙농육우협회는 “현재 우유 가격은 지나친 유통마진 때문”이라면서 “지난 2011년 원유 가격이 250원 인상됐을 때 유통마진은 144원에 달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농림축산식품부의 ‘2015 버터·세분시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생산자 원유 수취 가격은 2014년 기준 ℓ당 1088원이다. 원유 수취 가격은 생산된 원유를 유업체 등에 판매할 때 받는 최종 금액이다. 이는 일본 915원, 중국 656원, 호주 502원, 유럽 483원, 뉴질랜드 316원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금액이다.

유업체와 정부는 수취가격만으로도 낙농가가 이미 쿼터계약 등을 통해 충분한 재정과 수익을 보장받는다는 입장이다.

유업계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반영되지 않는 원유가격과 주요 소비층인 유아·청소년 숫자가 급감하면서 유업체 사정은 몇 년 전부터 좋지 않다”면서 “제도와 시장 등이 꼬일대로 꼬여서 정부, 생산자, 수요자 어느 한 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지경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상 시장 전체가 서로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원유가격이 내리지 않는 이상 시작 자체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 원유가연동제 개정안 결국 ‘법정다툼’으로 

수요자와 생산자의 갈등은 지난 7월 25일 낙농진흥회 임시이사회에서 원유가격 선정 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제하는 ‘원유의 생산 및 공급규정 개정(안)’ 통과되면서 극에 달했다.

이에 생산자 측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낙농육우협회 등은 최근 대전지방법원에 ‘변경안의 진흥회 이사회 결의 무효 확인’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원유가격연동제에 대한 찬반 다툼이 법정싸움으로 번진 것이다.

낙농육우협회는 지난달 10일 성명서를 통해 “그간 원유가격 산정체계, 원유가 협상 등 낙농제도와 관련된 중요사항은 낙농진흥회 이사회를 통해 결정됐으며 소위원회 합의를 전제로 이사회 안건에 부의해 처리돼 왔다”면서 “그런데 취임 5개월밖에 되지 않은 낙농진흥회장이 농식품부 핑계를 대며 합의의 산물인 원유가격 연동제 변경을 표결로 밀어붙이는 ‘갑질’을 했다”며 비난했다. 

이승호 낙농육우협회장은 이번 소송과 관련해 “이번 소송이 낙농가의 민심임을 정부와 진흥회는 직시하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낙농육우협회 청년분과위원회는 8월 9일 진흥회를 방문해 진흥회장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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