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밭에는 따가운 햇볕이 내리 쬐었다. 목에 수건을 두른 어르신들이 그늘막 아래에서 품을 쉬고 있었다. 얼마간이 지나자 트랙터가 앞뒤로 오가며 밭을 헤집었다. 어르신들은 간격을 두고 서서 무언가를 주워 자루에 담았다. 마치 사람의 형形을 닮은 그것은 바로 인삼이었다.
◇ 6년의 기다림이 머무는 곳
지난달 22일 서울에서 두 시간이 넘게 달려 도착한 곳은 전북 완주군 이서면에 위치한 6611㎡, 약 2000평 규모의 인삼밭이었다. 이미 한차례 초벌작업을 마친 인삼밭은 한 뿌리라도 더 캐기 위한 재벌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인삼 수확은 KGC인삼공사 직원이 입회한 가운데 이뤄졌다. 함께 동행한 직원은 밭에서부터 공장까지, 공장에서 소비자에게 제품이 도착하기까지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삼 한 뿌리에 적게는 2만원에서 많게는 9만원까지 하거든요. 계약된 밭에서 생산된 삼은 저희가 수매하는데 관리감독하는 사람이 없으면 일부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재배한 삼을 끼워넣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삼의 질이 낮아지고 이는 제품 퀄리티에도 영향을 미치죠. 이러한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매년 수확철에는 본사에서 전 직원이 돌아가며 관리관으로 현장에 배치됩니다.”
일반적으로 가장 영양소가 풍부한 것으로 알려진 6년근 삼을 키우고 수확하기 위해서는 총 8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먼저 인삼 재배 예정지의 생육적합도와 잔류농약·중금속 함유량을 살핀다. 그리고 무작위 시료를 채취해 KGC인삼공사의 자체 290여개 기준에 적합한지를 판단한다.
땅을 고른 뒤에는 인삼을 심기 1~2년 전부터 땅을 쉬게 하면서 지력地力을 끌어올린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춘 다음에야 비로소 인삼 생육이 가능하다.
8년의 시간 동안 6년근 삼을 키워낸 밭은 이후 15년간은 다시 삼을 품지 못한다. 삼이 지력을 모두 빨아들여 이후에 심긴 삼은 제대로 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삼밭으로 사용됐던 땅은 다른 작물을 키우는데 사용된다.
이날 하루 밭에서 수확한 인삼은 약 4톤으로 30㎏ 상자에 담겨 부여에 위치한 고려인삼창으로 이동했다. 5톤 트럭을 가득 메운 노란 상자에는 각각 주황색 끈과 보라색 끈이 달려있었다.
“주황색 끈으로 표시한 상자는 ‘원삼’이라고 해서 형태가 온전한 삼들을 담아 둔 상자입니다. 반대로 보라색 끈은 삼이 깨지거나 어그러져 뿌리제품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파삼’들을 담은 상자죠. 원삼은 말 그대로 뿌리제품으로, 파삼들은 형태와 크게 상관없는 농축액 등 제품으로 사용됩니다. 형태에 차이만 있을 뿐 영양과 효능은 차이가 없거든요.”
◇ 천삼天蔘을 가려내는 곳, ‘고려인삼창’
수확된 삼과 함께 이동한 곳은 1시간여 떨어진 부여 고려인삼창이었다.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는 삼 수확철인 9월부터 11월사이다. 해당 기간 동안 수확된 삼을 공장에서 가공해 제품으로 만들거나 농축액 등으로 저장해두고 1년간 제품화한다. 공장에 도착한 9월 22일은 공장의 1년 농사를 한창 진행 중인 시기였다. 인력도 평소보다 200~300여명 추가 투입된 900명이 근무하게 된다.
세척과 증기로 찌는 과정을 제외하고 선별·정형 등 홍삼 제조 과정은 전부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공장에 도착한 삼은 수삼水蔘으로 구분된다. 밭에서 캐낸 말리지 않은 삼을 지칭하는 단어로 75%의 수분을 머금고 있어서다. 수삼을 증기로 쪄서 말린 형태가 홍삼紅蔘이다.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만큼 KGC인삼공사가 주력하는 형태기도 하다.
“굳이 왜 찌고 말리는 번거로운 작업을 하냐는 이야기도 있어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몸에 좋은 유효성분들이 배가됩니다. 수삼일 때 사포닌이 24개라면 홍삼으로 가공하면 32개로 늘어나게 되죠. 예전에는 구증구포九蒸九曝라고 해서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렸다고 하는데 지금은 삼의 형태와 크기에 따라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찾아 단 한 번의 작업으로 마무리합니다. 사포닌은 고열과 고압에 약해 자칫 잘못하면 영양이 손실되거든요. 그 절묘한 수치를 찾아낸 것이 KGC인삼공사의 노하우죠.”
갓 쪄진 홍삼은 50%까지 수분이 줄어든다. 외형보존을 위해 진동기에서 잔뿌리를 털고 몸통 위주로 형태를 가다듬는다. 이후 홍삼은 건조장으로 이동해 보름간 일광건조 과정을 거친다. 기계를 통한 인조적인 건조는 삼 몸통에 구멍을 낼 수 있어 일광건조를 고집한다. 증기와 건조 과정을 거친 홍삼은 수분 함유량이 13%까지 줄어든다.
건조과정이 끝난 삼들은 ‘정형’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는 삼을 사람과 같이 머리·몸통·다리 형태로 만들기 위해 가다듬는다. 부여 고려인삼창에서는 하루 평균 90톤의 홍삼을 정형하며 올해 총 9800톤의 정형 작업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인삼을 3등급으로 나눠 분류한다.
정형을 지난 홍삼은 조직검사로 들어간다. 조직검사는 20년 이상 경력을 가진 조직선별사들이 암실에서 삼을 비춰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삼은 각각 천, 지, 양 세 등급으로 나눠져 있어요. 일반적으로 지 등급이 가장 많죠. 천 등급인 천삼天蔘은 전체 삼의 0.4%정도밖에 안돼요. 말 그대로 하늘이 내려주는 삼이죠. 아마 전국 정관장 매장에서도 천삼을 보유한 곳은 드물 거예요. 매장 600개당 하나를 겨우 보유할 정도죠.”
까다로운 공정을 통과한 홍삼들은 수분조절이 탁월한 한지와 나무상자로 포장된 다음에야 비로소 하나의 제품으로 완성된다.
홍삼을 제외한 농축액 등 가공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은 모두 자동화로 구성됐다. 홍삼액을 만드는 작업장에는 추출탱크와 원심분리설비, 숙성탱크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물과 홍삼을 넣고 달인 뒤 원심분리설비로 옮겨 침전물을 제거한다. 이후 농축탱크에서는 남아있는 수분을 날려 홍삼액이 마치 꿀처럼 되도록 만든다. 완성된 농축액은 숙성탱크로 옮겨진다.
이렇게 생산되는 KGC인삼공사 대표 제품 ‘정관상 농축액’이다. 240g 한 병 농축액을 만드는 데는 수삼 30~40뿌리가 필요하다. 열 뿌리에서 한 방울 정도 추출되는 ‘홍삼오일’은 화장품 ‘동인비’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 한국만의 인삼人蔘
일반적으로 알려진 ‘인삼’이라는 단어는 국내에서 생산된 삼에만 붙여진다. 중국 등 외국에서 생산된 삼의 경우 토양은 물론 재배기술의 차이로 사람(人)의 형태를 띠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국에도 KGC인삼공사가 관리하는 생산공장과 밭이 있지만 국내에서 생산되는 정도의 품질을 갖추지는 못하고 있다. 기본적인 토질과 기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중국에서 한국인삼을 보기 위해 공장으로 견학오는 중국 관광객들도 상당하다.
“홍삼이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이기도 하고, 세계적으로는 유일하다보니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대단해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인한 경제적 보복이 있다고는 하지만 해외 매출 비중이 20%정도이기도 하고, 워낙 인삼에 대한 관심이 높다보니 사실상 큰 타격은 없습니다.”
이날 부여 고려인삼창에는 몇 무리의 중국관광객들이 방문해 견학을 진행했다. 연 평균 방문객은 1만5000명으로 이 중 9000여명이 외국인 관광객이다. 중국관광객은 이 절반인 4500명에 달한다고 KGC인삼공사는 설명했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