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야경은 여행의 또 다른 재미다. 뉴욕, 파리, 밀라노, 런던, 상하이, 홍콩 등의 야경을 감상코자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기꺼이 초고층 레스토랑에서 지갑을 연다. 그리고 한국은 적어도 야경, 정확히는 불 밝힌 빌딩숲에 있어선 앞선 도시들에 뒤지지 않는다. 서울의 야경을 감탄하는 외국인에게 “야근 때문”이라고 답했다는 이야길 들어보았는가? 불빛숲 뒤에는 직장인들의 고된 일상이 감춰져 있단 사실을 ‘돌려 까는’ 우스갯소리다.
#건축 설계일을 하는 최은영(30·가명)씨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다. 업무 특성상 야근과 밤샘 근무가 잦았지만, 바랬던 일이라 처음 1~2년은 고되도 버틸 수 있었다. 그랬던 최씨는 최근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1년간 배낭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기자가 이유를 묻자 곧바로 “일만큼 제 일상생활도 중요하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씨는 “‘배가 불렀다’느니 ‘인내심이 없다’는 말도 들었다”면서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여행을 마치고 나서도 생활을 깨뜨릴 정도의 일은 하지 않을 작정”이라고 말했다.
최씨처럼 격무로 일과 삶의 균형이 깨진 이들이 휴식과 취미활동, 자기계발 등 일에서 잠시 떨어져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는 이들이 늘고 있다. 최근 취업준비생과 젊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워라밸’이 그것이다.
워라밸은 ‘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 WLB)의 줄임말로 일·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과거 손학규 당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대선 공약으로 내건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이 현재 회자되는 워라밸의 기본방향에 부합한다.
그렇다고 워라밸이 짧은 근무 시간과 약한 업무 강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관련해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구인구직 정보 제공 플랫폼인 잡플래닛과 함께 2017 워라밸 실천기업을 선정하며 밝힌 워라밸의 의미는 정부가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고용노동부는 ‘워라밸이 기업에 가치를 더하고 업무 효율을 높이는 필수 조건’이며 ‘업무와 삶의 선택권에 대한 보장이자 업무 속에 삶과 삶 속에 업무가 녹아들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근무 환경’이라고 정의했다.
여성가족부, 한국건강가정진흥원 등도 나섰다. 이들 기관은 ‘일·생활 균형 10대 핵심 실천 제안과제’를 발표했는데, 이는 직장·가정·경영자 및 관리자·근로자로 세분화한 제안을 내걸었다. 면면은 다음과 같다.
일단 직장에서는 ▶정시퇴근 YES! 퇴근 후 업무연락 NO! ▶엄마아빠의 육아휴직이 당연한 직장문화를 만든다 ▶공정하게 직원을 채용하고 평가하며, 성별에 따라 임금을 차별하지 않는다 등이고, 가정에서는 ▶집안일을 함께하고 함께 쉰다 ▶육아는 엄마아빠가 공동으로 함께 한다 ▶우리 사회의 가족친화기업 문화 확산에 솔선하겠다 등.
경영자·관리자를 위한 제안은 ▶우리 사회의 가족친화기업 문화 확산에 솔선하겠다 ▶근로자가 눈치 보지 않고 가족친화제도를 이용하겠다 ▶우리 회사에 맞는 가족친화 프로그램을 적극 시행하겠다 등이며, 근로자는 ▶근로시간에는 업무 집중도를 높여 일하겠다 ▶동료의 일·생활 균형을 존중하겠다 등이다.
물론 정부의 캠페인이 문화를 바꿔보자는 운동일 뿐 강제성을 갖진 못한다. 때문에 정부가 주목하는 워라밸이 확산되고, 기업 및 가정 문화가 바뀌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은 자명하다.
참고로 OECD가 매년 발표하는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에서 한국은 35개국 중 4.7점으로 끝에서 4번째를 기록했다. 지수가 말해주듯 덜 자고 더 일하며 공동체간 소속감이나 행복이 낮은 우리사회에서 정부가 펴고 있는 최근의 워라밸 캠페인은 그것이 설사 ‘말’뿐일지라도 여러 시사점을 가진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