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원법’놓고 의사-환자 갈등...편견없는 치료, 갈 길 멀다

'임세원법’놓고 의사-환자 갈등...편견없는 치료, 갈 길 멀다

환자들, 정신장애인 편견 강화·강제입원 완화 우려...의료계 "임세원법 오해한 것" 해명

기사승인 2019-02-09 03:00:00

의료계가 추진하는 ‘임세원법’ 제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임세원법 입법 공청회’에서는 의사와 환자 간 팽팽한 견해차가 확인됐다. 의료계를 향한 정신장애인들의 뿌리깊은 불신이 원인이었다.

임세원법은 故임세원 교수와 유가족의 뜻인 안전한 진료환경과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없는 치료환경 구축방안을 담은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이다.

특히 의료계는 사법입원제 도입을 중점적으로 내세웠다. 사법입원제란 의사가 순수하게 의학적 판단만으로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결정하면 사법기관이 환자의 상태, 가정환경 등을 고려해 입원 적절성을 평가하는 제도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상 정신질환자의 입원에 대한 의료인과 환자의 책임이 과도하게 지워진 점을 보완한 것이다.

그런데 정신장애인단체는 사법입원제 도입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불합리한 강제입원을 수월하게 만들 것이라며 우려했다. 과거 일부 정신의료기관에서 이뤄진 비인권적인 강제입원과 폭력적인 치료행태 등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정신장애인 인권단체 파도손 이정하 대표는 “임세원법안의 첫 문장부터 임세원 교수 피살 등 살인사건이 등장한다. 경찰청자료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은 일반인보다 범죄율이 낮은데도 마치 우리가 범죄자인 것처럼 살인자취급을 한다”며 “정신장애인들을 강압적으로 치료하지 않고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 재발하더라도 당사자의 숙명이자 장애의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현재 정신병원 시스템 안에서는 제대로 치료받지 못 한다. 1989년부터 2006년까지 정신병원을 퇴원한 환자들이 1년 안에 10만 명당 1100명 넘게 자살했다. 그런 치료를 받고 나오면 죽고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라며 임세원법 반대 이유를 밝혔다.

이들 정신장애인 단체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의학적 치료접근을 ‘실패’로 규정했다. 정신건강 서비스 정상화 촉구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폐쇄병동에 감금하여 약물치료를 하는 기존의 치료중심접근을 더 강력하게 만드는 작금의 여러 제안들은 너무나 위험하다”며 “수십 년 동안 이미 실패했음이 드러난 강제입원, 강제치료, 강제관리의 낡은 시스템을 더욱 강화시켜 인권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날 공청회에 앞서 이들은 ‘자유가 치료다’, ‘강제입원이 문제다’, ‘가혹행위 조사하고 정신병원 문 닫아라’ 등의 팻말을 들고 기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정신장애인 단체의 이같은 반대에 의료계는 임세원법에 대한 오해가 크다고 해명했다.

최준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는 “이번 법안에서 입원치료영역을 넓히거나 환자의 자유를 제한하려던 의도는 없다. 정신질환이 심각하고 판단능력이 손상될 우려가 있는 환자의 입원을 대상으로 합리적이고 명백한 기준을 만든 것”이라며 “비자의입원 요건의 경우 자타의 위험성과 치료필요성 두 가지다. 자타해 위험에 대한 비자의입원은 국제적 기준에서도 필요성을 인정하는 부분이고, 또 치료필요성에 대한 요건은 기존보다 제한을 강화했다. 사법입원제는 기존의 외래치료명령제로 인한 강제입원보다 훨씬 순화된 방법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 법제이사는 “사법입원제에서 채택한 심사방법은 민법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대한 형법적인 조치가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먼저 병의 질환과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 환자가 아픈데도 불구하고 범법자 취급을 당할 우려가 적다”고 덧붙였다.  

다만, 정신질환자 치료실태 파악, 지역사회 서비스체계 및 조기개입 체계 구축 등 정신질환 관련 국가 재정 확대와 지원에 대한 부분에서는 정신장애인단체도 의료계와 같은 목소리를 냈다. 결국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부족한 지원을 우선 해결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이해국 가톨릭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좋은 치료란 사회적 치료망을 촘촘히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법과 제도의 변화만으로는 이상적인 모습을 구현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과 재원의 마련”이라며 “환자들의 요구처럼 현재 사회적으로 정신병원에 5년, 10년 이상 입원해 있는 분들을 전수조사도 이뤄져야한다. 또 필요하다면 정신건강 예산확보를 위한 1인시위에도 나서겠다”며 전문가로서의 책임을 강조했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정신질환자가 각종 사회적 낙인, 분리, 배재의 대상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아 스스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적, 제도적, 재정적 뒷받침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아직도 우리나라는 굉장히 부족한 점이 많다. 정부가 과감한 투자를 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석준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법과 제도만으로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공적재원이고, 현재 정신건강 예산 1.5%에서 5%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며 “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마음 문을 열기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신질환자를 포기하는 사회가 아니라 더불어 같이 사는 인식이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보건복지부는 임세원법에 대해 전반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준욱 복지부 건강정책국 과장은 “사법입원 전환에 대한 부분은 현재 입원적합성심사에 대한 평가가 우선돼야하고, 근거에 기반한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또 정신질환에 대한 전반적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현재 5년주기로 이뤄지는 정신질환실태조사의 주기와 대상 등을 재정립할 계획이다. 정신보건 예산의 경우 전체 보건 예산의 1.5%에 그쳐 차제에 기재부와 정신재활시설에 대한 중앙정부의 보조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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