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 확보하지만 체혈은 '불법'...업무기록지도 없는 응급구조사들

혈관 확보하지만 체혈은 '불법'...업무기록지도 없는 응급구조사들

수행하는 업무 대다수가 합법-불법 경계...결국 응급환자 피해로

기사승인 2019-02-12 02:00:00

#수도권에 위치한 한 대형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하는 응급구조사 A씨는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 중 대다수가 불법에 해당한다고 토로했다. A씨는 “응급의료분야의 최신 트렌드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데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는 단 14개에 멈춰있다. 일상적으로 해오던 업무조차 엄밀하게 따져보면 불법인 경우 많다”며 “의료가 발전할수록 법 위반이 늘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가 지나치게 적다는 지적이 나왔다. 응급의료 현장과 법적인 업무범위 간 괴리로 인해 일선 응급구조사들이 불법적인 근로환경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1급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는 ▲심폐소생술 시행을 위한 기도삽관 ▲정맥로 확보 ▲수액·기관제확장제 등 약물투여 ▲인공호흡기를 통한 호흡확보 등 14가지에 국한돼있다.

문제는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제한이 응급환자 처치를 지연시키거나, 같은 업무 반복시키는 등 모순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심장마비 위험이 있는 흉통환자에게 필요한 12유도 심전도 검사를 시행할 때 응급구조사가 심전도 전극을 환자에게 붙이는 것은 괜찮지만, 출력버튼을 누르는 순간 불법이 된다.

또 환자의 말초정맥로를 확보하는 일은 응급구조사의 업무로 허용되지만, 확보한 정맥로에서 혈액을 채취하는 것은 불법이다. 때문에 응급구조사가 정맥로를 확보하더라도 혈액 채취없이 수액줄을 연결하고, 추후에 간호사나 의사가 재차 혈액을 채취해야 하는 등 같은 업무를 두 번씩 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병원 내에서 일하는 응급구조사들의 경우 업무기록지조차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응급구조사들이 시행하는 업무내역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고, 환자안전사고 등이 생길 경우 원인 추적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모순은 지난 설 연휴 전날 근무 중 순직한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도 지적했던 문제다. 윤 센터장은 자신의 SNS에 “흉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119구급대원이 12유도 심전도 검사를 실시하고 이를 의사에게 전송해 확인한 후, 시술(PCI라고 한다)을 해야 할 심근경색이면 심혈관센터로 이송하는 간단한 절차가 우리나라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한다. 현행의 응급구조사 업무범위에서 12유도 심전도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의료비도 낭비고, 의료자원도 낭비고, 무엇보다 환자에겐 ‘황금같은 시간’이 버려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업무범위의 한계에서 시달리는 사람은 응급구조사이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의 몫”이라며 “행위의 위험성과 숙련성에 의한 안전성을 비교해 우리나라 의료여건에 맞도록 타당한 업무범위와 그 업무를 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다만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확대와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의료인이 아닌 응급구조사의 개입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또 관련 응급구조사 교육은 적절하게 이뤄지고 있는 지 등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응급구조학계가 응급의료 전문가 200여명을 대상으로 적정 업무 범위를 조사한 연구 결과 ▲환자 활력징후 측정 ▲외상환자 평가 ▲심전도 검사 개입 ▲혈당 체크 ▲혈액배양검사를 포함한 정맥혈 채혈 ▲동맥혈 채혈 개입 ▲봉합보조개입 ▲수술준비 및 응급수술 보조개입 ▲수동 제새동 개입 등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

반면 근육·피하주사에 개입하거나 약물투여, 동맥관 삽입, 기관 내 삽관 등에 개입하는 것에는 부정적인 의견이 긍정적 의견보다 높게 나타났다. 

김진우 대한응급구조사협회장은 “현재 응급구조사들은 3-4년제 대학에서 이론과 실습으로 충분히 트레이닝을 거처 배출되고 있고, 협회 차원에서도 전문교육과정을 도입하는 등 교육에 힘쓸 예정”이라며 “응급구조사들의 업무범위가 늘어난다면 응급환자에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처치가 이뤄질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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