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연속이다. 미국 NBC에서 제작해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굿 플레이스’(The Good Place)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상을 벗어난다. 사후세계와 인간의 윤리관, 선과 악 등 심오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20분 분량의 가볍고 코믹한 터치로 풀어낸다. 주인공 엘리너 셸스트롭(크리스틴 벨)의 자력갱생 프로젝트로 생각한 이야기는 주변인들을 돌아보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중엔 이곳이 정말 굿 플레이스가 맞는지, 엘리너가 악인인지 같은 근본을 뒤흔드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정체를 알기 위해 다음 회 재생 버튼을 계속 눌렀다. 대체 이 드라마, 정체가 뭐지.
‘굿 플레이스’는 원래 배드 플레이스(Bad Place)로 가야 했던 엘리너 셸스트롭이 설계자의 실수로 굿 플레이스(Good Place)에 도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눈치 챈 가짜 엘리너는 원래 그곳에 왔어야 할 진짜 엘리너의 소울메이트 치디 아나곤예(윌리엄 잭슨 하퍼)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굿 플레이스에 머물고 싶은 엘리너는 그곳에 어울리는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한 번에 변하긴 쉽지 않다. 대신 가끔씩 저지르는 악행으로 재난을 일으켜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친다.
‘굿 플레이스’를 흥미롭게 본 이유는 선(善)을 다루는 태도 때문이다. 생전에 착한 일을 아주 많이 한 사람들만 살고 있는 굿 플레이스에서 죽기 전까지 악행을 거듭하며 살았던 엘리너는 대단히 튀는 존재다. 자신이 굿 플레이스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란 건 엘리너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굿 플레이스의 착한 사람들은 엘리너를 섣불리 교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가장 가까이에서 조력자 역할을 치디가 엘리너에게 도움을 주려고 내뱉은 말은 “배드 플레이스로 가라”다. 엘리너가 열심히 노력하면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냐고 주장하지만, 치디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한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굿 플레이스 주민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정상(正常)이라거나, 정상이 다수인 사회에 머물기 위해 비정상(非正常)인 엘리너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정작 노력해서 변화하고 싶어 하는 건 엘리너다. 튀는 존재에서 튀지 않는 존재가 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비정상에서 정상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이미 생전에 엘리너는 누구보다 튀는 사람이었고 비정상의 끝판왕이었다. 새로 전학 간 고등학교에서 친해지려고 다가오는 친구들에게 일일이 거절하는 것이 귀찮은 엘리너는 식탁 위로 올라가서 정중한 말투로 너네들이 뭘 하든 상관없으니 날 혼자 두라고 경고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런 엘리너에게 굿 플레이스는 계속 머물고 싶은 이상(理想) 공간이고, 주민들은 그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다. 엘리너는 그곳에서야 더 나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치디에게 윤리학 강의를 듣고 잘난 척하는 타하니에게 손을 내민다.
시청자의 입장은 또 다르다. 처음엔 잠깐씩 비추는 생전 엘리너의 악행에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친구에게 거짓말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의 불행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심했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드라마 중반을 넘어가면 착하고 또 착해서 재미없는 굿 플레이스 주민들보다 자유롭게 할 말을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엘리너에게 더 눈길이 간다. 엘리너의 욕설 한 방에 속이 시원해지고, 이번엔 또 어떤 사고를 칠까 두근두근하며 지켜보게 된다.
드라마 초반부 ‘나도 착한 일 많이 해서 굿 플레이스에 가야지’ 했던 생각은 어느 순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대신 천당과 지옥의 이분법으로 사후세계를 가르는 게 올바른 방식인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어떻게 가르는지 질문하고 싶어진다.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피부색과 출신지는 제작진이 시청자들이 느낄 불편함을 제거한 흔적으로 읽힌다. 나쁜 사람을 만나도 스트레스 받는 대신 엄청난 마이너스 점수와 함께 배드 플레이스로 떨어진 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는 건 ‘굿 플레이스’ 시청자를 위한 보상이다.
매 시즌 12~13부작, 매회 20분 분량으로 빠르게 볼 수 있다. 넷플릭스에는 시즌3 12회까지 공개되어 있다.(2019년 3월 1일 기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