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경영권서 멀어진 조양호 회장, 사내이사 연임 실패…앞날은?

대한항공 경영권서 멀어진 조양호 회장, 사내이사 연임 실패…앞날은?

땅콩회항 등 총수 일가 사회적 물의…조 회장도 횡령‧배임 등으로 재판 중

기사승인 2019-03-27 15:29:32

시민단체 등은 “역사적인 사건·자본시장 촛불혁명" 평가

지난 20년간 대한항공을 이끌었던 조양호(70) 전 한진그룹 회장이 27일 주주총회에서 경영권 수성에 실패했다. 대한항공은 조 회장이 사내이사직을 상실한 것은 맞지만, 경영권 박탈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27일 대한항공 주총에 상정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은 찬성 64.09%, 반대 35.91%로 부결됐다. 대한항공 정관에 따르면 주총 참석 주주 3분의 2 이상 찬성표를 얻어야 사내이사직 수성이 가능하다. 지분 2.6%가 부족해 재연임에 실패했다.

조 회장은 1999년 아버지 고 조중훈 회장으로부터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물려받은 뒤 지난 20년 동안 대한항공을 이끌어왔다. 지금까지 여러 부침이 있었지만 조 회장이 대한항공을 세계적인 항공사로 성장시키는데 기여가 컸었다는 의견이 많다. 

이날 주총 결과에 대해 대한항공 내부에서는 조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잃게 되면서 경영에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다만 조 회장 장남인 조원태 사장이 여전히 대표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고, 조 회장도 주식 지분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어 조 회장의 영향력이 완전히 배제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는 6월 대한항공 주관으로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총회 개최가 가장 큰 문제다. IATA는 현재 전 세계 120개국 287개 민간 항공사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항공 관련 국제 협력 기구다. 총회 의장은 주관항공사 최고경영자(CEO)가 맡는 관례에 따라 조 회장이 의장 자리에 앉아야 하지만, 사내이사 재선임 실패로 대책 마련도 쉽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이 주총 결과 사내이사 재선임이 부결됐지만 이는 사내이사직 상실이며 경영권 박탈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실패는 국민연금 등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통한 것이라는 첫 사례로 남게 됐다. 현재 조 회장은 검찰에 의하 약사법 위반,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위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사기 등 혐의로 지난해 불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특히 이번 이사재선임 실패가 땅콩회항 등 사회적 물의을 빚은 조 회장 일가의 여러 사건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국내 의결권 자문사와 시민단체들은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자본시장 촛불혁명"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또 일각에서는 조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는 것이 오히려 대한항공의 경영 투명성을 강화해 회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앞서 국민연금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와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와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은 조 회장 사내이사 재선임안에 반대 투표를 권고했다.

해외 공적 연기금인 플로리다연금(SBAF), 캐나다연금(CPPIB), BCI(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 등도 의결권행사 사전 공시를 통해 조 회장 연임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아울러 참여연대, 대한항공 직원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도 조 회장 연임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날 주총장 앞에서는 '대한항공 정상화를 위한 주주권 행사 시민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3일부터 약 2주간 주주들에게 의결권 위임 권유 활동을 한 결과 소액주주 140여명에게서 51만5907주(0.54%)를 위임받았다"고 밝혔다.

주총장 안에서도 조 회장을 비롯한 대한항공 이사회의 경영·감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주주 자격으로 참석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땅콩회항 사건부터 지금까지 조 회장 일가로 인해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한진해운 지원으로 회사에 8000억원대 손실을 미치고 일감몰아주기 등으로 문제를 일으켰는데, 이사회가 어떤 관리를 하고 감사를 했느냐"고 물었다.

이번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실패에도 전체 한진그룹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당분간은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현재 대한항공 주식 지분은 조 회장과 한진칼(29.96%) 등 특수관계인이 33.35%를 보유하고 있다.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11.56%, 외국인 주주 지분율은 20.50%다.

또 한진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한진칼의 경우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조양호 회장 등)이 28.93%를 보유하고 있다. 이어 행동주의 사모펀드인 KCGI(일명 강성부 펀드)가 10.71%, 국민연금공단이 7.34%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는 29일 예정된 한진칼 주총에도 관심이 쏠린다. 현재 조양호 회장과 아들인 조원태 사장의 한진칼 사내이사 만기는 내년 3월까지다.

이에 대해 이베스트투자증권 송치호 연구원은 27일 보고서를 통해  “이번 대한항공 표결에서 64.1%가 찬성하고, 35.9%가 반대했다는 점은 신규 사내이사를 선임하는 과정에서도 한진그룹측이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는 부분으로 작용한다”며 “다만 이번 이번 표결에서 연임을 위한 표가 부족했던 만큼, 보다 폭 넓은 주주 및 의결권 자문사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신규후보로 제안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송치호 연구원은 “한진그룹 지배구조핵심인 한진칼의 조양호 회장 및 조원태 사장의 사내이사 만기는 2020년 3월이다. 내년 3월 한진칼 주총이 그룹 전체 지배구조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핵심 시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성은 기자 seba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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