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항공업계의 양대 축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수장이 최고 경영자 자리에서 동반 퇴진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퇴진 형식과 방법은 달랐으나 두 회장 모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재선임안이 부결되면서 대표이사로서의 자격을 잃게 됐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최근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의 감사보고서 문제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바로 그 다음날인 28일 전격적으로 용퇴 결단을 발표했다.
금호아시아나 측은 "대주주로서 그동안 야기됐던 혼란에 대해 평소의 지론과 같이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차원에서 결심하게 됐다"며 퇴진 배경을 설명했다. 박 회장의 퇴진은 그룹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의 감사보고서 논란이 결정적 이유였다는 해석이다.
지난 27일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이 주주에 의해 대표직을 상실하자 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 주총을 하루 앞두고 박 회장 역시 주주와 여론의 극심한 반발을 고려해 결심을 내렸다는 관측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이원태 부회장을 중심으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면서, 외부인사를 회장으로 영입하는 것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비상경영체제로 운영되는 위원회에는 계열사 사장들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회장으로 외부인사를 영힙하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뀌게 된다.
이는 박 회장이 그룹 회장직은 물론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의 대표이사직과 등기이사직, 금호고속 사내이사직에서 모두 사퇴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반면 조 회장은 박 회장과 달리 대한항공 대주주이자 미등기 회장으로 경영권을 이어갈 수도 있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상황이다. 대한항공 사내이사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에 회사 내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참여할 수 없다. 하지만 미등기 임원으로서 회장직을 계속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또 조 회장이 여전히 그룹 지주사 한진칼의 대표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대한항공에도 간접적인 경영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 측은 주총이 끝난 27일 “조양호 회장이 주총 결과 사내이사 재선임이 부결됐지만 이는 사내이사직 상실이며 경영권 박탈은 아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조 회장이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이 부결된 뒤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은 물론 조 회장 스스로도 어떠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어 소위 '뒷방 경영'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지난 2014년 '땅콩 회항' 당시 피해자였던 대한항공 직원연대 박창진 지부장은 “지금까지 경영능력이 없는 경영자들에 의해 이끌려 왔다는 참담한 마음에 안타깝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뒷방 경영을 견제하겠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그는 지난 27일 KBS '뉴스9'에 출연해 “조 회장도 뒷방 경영을 계속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고 노조, 그리고 개인적 연대를 통해 견제해 나갈 것이다. 이미 대한항공이 조 회장이 이사직을 물러났다고 해서 경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선포한 것이 그들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따라서 사회적인 여론과 주주들의 반발을 의식해 대한항공과 한진그룹 경영에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전면에 나설 수도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조 회장이 그룹 최고경영자 자격으로 대한항공 이사회의 논의 결과 등을 보고 받는 방식 등을 통해 경영에 간접 참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변수도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조 회장의 횡령‧배임의 재판 결과와 조 회장의 연임건이 있는 내년 3월의 한진칼 주주총회다. 재판 결과에 따라 조 회장의 선택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또한 국민연금이 29일 진행된 한진칼 정기주주총회에서 상정한 '이사자격 강화'를 담은 정관 일부 변경안이 부결됐지만, 내년 3월 조 회장의 연임과 관련된 이슈가 있는 만큼 또 다시 주주권 강화를 내세워 소위 행동에 돌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땅콩회항에서 시작해 횡령과 배임으로 번진 대한항공, 기내식 대란과 아시아나항공 감사의견 논란을 겪은 아시아나항공. 사회적 논란으로 국내 양대 항공사 최고경영자들이 퇴진하는 상황이지만 '묵묵부답'과 '책임을 지고 퇴진'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배성은 기자 seba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