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약물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환자 A씨가 응급실에 왔다. 응급의료진은 A씨에게 맞지 않는 약물만 피해서 진료할 수 있을까.
8일 ‘개인의료정보 주권 구축방안’을 주제로 열린 국회토론회에서 김영학 서울아산병원 헬스이노베이션 빅데이터센터장은 ‘개인건강기록(PHR·personal health record) 활용’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환자가 자신의 건강기록을 휴대폰 등에 소지하고, 진료 시 자기 정보를 의료기관에 제공하는 새 방식이 자리 잡는다면, A씨는 더 이상 응급실에서 약물알레르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PHR이 활용이 되면 의료진이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우왕좌왕하지 않고 제대로 된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3차병원 진료실에서는 환자를 1년 만에 보기도 하고 2년 만에 보기도 한다. 의사는 환자에 맞춰 제대로 진료하기 어렵고, 환자도 만족스러운 진료를 받기 어렵다. 이 때 PHR이 활성화되면 의사가 보지 않는 시간을 개인의료정보가 대신할 수 있어 맞춤형 진료가 가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의료정보는 개인보다는 병원과 의료인이 수집 및 활용해왔다. 그런데 디지털헬스케어 기술의 발전으로 환자가 의료정보 활용의 핵심 주체로 떠오른 것이다. 의료산업 관련 업계에서는 개인의료정보 활용을 통해 수동적인 환자가 아닌 능동적인 의료소비자로 변모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그러나 풀어야할 문제가 많다. 개인정보 유출 등 피해를 걱정하는 시민사회 등의 반대가 대표적인 장애물이다. 자칫 환자들에게 득보다 실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신현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보건의료위원회 변호사는 ”전문성을 가진 의료기관에 맞서 환자가 정보 주권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당장 수술실CCTV만이라도 제공을 하면 모를까 그런 것도 망설이면서 개인의료정보에 대한 주권을 환자가 행사하는 방향이 정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술만능주의나 신사업성장동력으로 바라봐서는 왜곡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를테면 생명보험회사에 개인정보가 넘어가 시장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개인정보활용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민사회도 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의료정보 주권 구축이 소비자입장서는 장점이 더 많다고 본다. 수동적인 환자가 능동적인 의료소비자가 될 수 있다는 부분”이라며 “다만 소비자의 명시적인 동의에 기반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고, 정보수집목적에 한정해서 활용될 수 있도록 법적제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 대표도 “환자단체는 마이데이터에 대해서는 찬성한다. 진료기록지나 의료정보를 환자가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다. 발전된 사회를 살고 있음에도 병원을 옮길 때마다 CT나 MRI를 매번 다시 찍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개인의료정보의 활용이 활성화되려면 관련 기술과 인프라, 법·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지난해 정부가 보건의료 빅데이터 시범사업 등 관련 정책을 추진해왔지만 아직 시범사업 단계에 그쳐있다.
오상윤 보건복지부 의료정보정책과장은 “아직 우리 국민들이 자기 의료정보의 가치나 활용도에 대한 인식 수준에 높지 않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PHR은 활용도 높다. 공적인 프레임 하에서 이뤄져야 하고, 복지부도 이에 맞추어 진료정보 교류시스템과 병원 전자의무기록시스템을 인증해주는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오남용이 없도록 가이드를 만들고 환자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디테일한 방안을 논의해나가겠다”고 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