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가 화학부문 설비 신·증설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제유가 등 대외변수에 취약해 ‘천수답’(天水畓:빗물에만 의지해 경작하는 논)사업으로 불리는 기존 정유 부문의 의존도를 낮추고, 석화 사업 진출을 통해 안정적 수익 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6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사우디 국영회사 아람코의 자회사 에쓰오일과 현대중공업지주의 자회사 현대오일뱅크 등은 석화사업 부문에 조단위 대투자와 설비 신·증설을 통해 화학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정유사는 에쓰오일이다.
먼저 에쓰오일은 지난달 25일 업계 최대규모인 7조원 규모의 신규 석유화학 투자안을 발표했다. 이날 아민 H. 나세르(Amin H. Nasser) 사우디아람코 사장과 김철수 에쓰오일 이사회 의장은 서울 콘래드호텔에서 에쓰오일의 석유화학 2단계 투자 계획인 SC&D(Steam Cracker & Olefin Downstream:스팀크래커 및 올레핀 다운스트림) 프로젝트를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양사 협력을 통해 진행될 에쓰오일의 석유화학 2단계 투자 SC&D 프로젝트는 나프타와 부생가스를 원료로 연간 150만톤 규모의 에틸렌 및 기타 석유화학 원재료를 생산하는 스팀크래커와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올레핀 다운스트림 시설이다. 이 시설에는 2024년까지 약 7조원이 투자될 예정이다.
아울러 에쓰오일은 최근 5조원을 투자해 준공한 석유화학 1단계 복합석유화학시설(RUC/ODC)을 통해 기존 사업포트폴리오에서 석유화학 비중을 5%에서 13%까지 확대했다.
에쓰오일은 최근 복합석유화학시설 가동과 2단계 투자 계획 발표를 통해 ‘석유에서 화학으로’ 전환을 이뤘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이번 2단계 프로젝트까지 추진되면서 43년전 소규모 정유회사로 출발한 에쓰오일이 올해 종합에너지 화학 기업으로 도약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또한 모회사 아람코의 전폭적 지원을 통해 화학산업 진출을 통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했고, 핵심사업인 정유·윤활유·석유화학 분야에서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향후 탄탄한 사업구조를 통해 견조한 수익 창출 능력을 확보하게 됐다는 게 에쓰오일 측 설명이다.
현대중공업지주의 자회사 현대오일뱅크도 석유화학 사업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3일 자회사인 현대케미칼과 현대코스모를 통해 아로마틱 석유화학 공장 증설에 총 26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회사가 증설에 나선 아로마틱은 혼합자일렌을 원료로 파라자일렌과 톨루엔 등을 생산하는 석유화학산업의 주요 분야다. 이들 제품은 합성섬유, 건축자재, 기계부품소재, 페트병 등을 만드는데 폭 넓게 쓰인다.
먼저 현대케미칼은 1000억원 규모의 설비 보완 및 증설공사를 이달 중 마무리할 계획이다. 공사가 끝나면 아로마틱 원료인 혼합자일렌 생산능력은 연간 120만톤에서 140만톤으로 확대된다.
현대코스모도 최근 1600억원 규모의 공장 증설 계획을 확정하고 상세설계에 착수했다. 내년 6월 공사가 완료되면 대표 아로마틱 제품인 파라자일렌 생산능력은 현재보다 18만톤 늘어난 연간 136만톤에 이르게 된다.
이번 증설로 인해 기대되는 연간 영업이익 개선효과는 860억원 수준이다. 특히 2022년 올레핀 석유화학 공장이 2조7000억원 규모 HPC(Heavy feed Petrochemical Complex)까지 정상 가동되면 전체 영업이익에서 석유화학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25%에서 50%로 상승할 것이라는 게 현대오일뱅크 측 전망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사업은 매출 규모는 비대하지만, 영업이익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며 “반면 정유사 입장에서 석화 부문은 수익은 정유보다 우수하고 원유정제 과정에서 나온 잔사유를 곧바로 처리해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 정유사가 석화 사업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중권 기자 im918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