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은 지난 7월부터 가파르게 상승해 ‘1차 저항선’으로 불리는 1300원을 뚫었다.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발표된 지난 15일을 기점으로 1390원대로 급등해 13년 5개월여 만에 장중 1397.9원으로 최고점을 기록했다.
20일 종가기준 원·달러 환율은 1389.5원으로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1450원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오는 21일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또 한 번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올 3분기 환율 상단을 1400원에서 1450원으로 50원 상향 조정했다. 백석현 연구원은 “환율이 1400원에 거의 다다른 만큼 우선은 1450원으로 상단을 조정하고 그 이후 흐름을 봐야 한다”면서 “미국 긴축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9월 FOMC가 달러 고점으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 경제가 나빠져도 중국과 유럽은 더 악화하는 상황”이라면서 “여기에 우리나라 무역과 수출 등이 세계 경기침체 등으로 악화한다면 환율 레벨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 1450원을 넘어 그 위로도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강달러 현상이 이어지자 국내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도 가속화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이달 15일까지 코스피에서만 1조5000억원어치 주식을 팔아 치웠다. 13일 하루를 제외하면 이달 내내 매도 우위를 이어갔다. 외국인 투자자가 보유한 코스피 시가 총액 비중 역시 지난 2009년 7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반면 서학개미들의 미국 주식 매수는 늘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16일까지 국내 투자자들은 1억3957만달러(한화 약 1940억원)어치 미국 주식을 순매수했다. 올해 줄곧 매수 우위로 대응하다 미국 증시 약세와 환율 급등으로 순매수를 멈췄다. 7월과 8월에 각각 367만달러(약 51억원), 5억7153만달러(약 7944억원)를 순매도했다. 7월 이후 반등한 주식의 달러가 급등하자 환차익을 누린 것이다.
고환율 수혜주, 달러 ETF 등 환테크 ‘집중’
환율이 오르면 수출 증대로 인한 효과가 커지면서 수출주에 호재로 작용한다. 국내 증시에선 환율 민감도가 높은 업종으로 정보기술(IT), 2차전지, 자동차, 조선 등에 관심이 높다.
김성근 미래에셋증권 글로벌자산배분팀 선임연구원은 “달러 강세는 수출 기업들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수입 의존도가 높은 업종에는 불리하다”면서 “수혜 업종은 수출 비중이 높고, 이익 모멘텀이 유지되고 있는 배터리, IT 하드웨어, 자동차와 부품, 기계가 꼽히고 달러 표시 원자재를 수입해야 하는 음식료, 정유, 유틸리티는 피해업종”이라고 분석했다.
현대·기아차 등 국내 완성차업계도 원·달러 환율 수혜 업종으로 꼽힌다. 철광석, 구리, 알루미늄, 배터리 소재 등을 비롯해 각종 원자재 가격이 올라가고 있는 것은 부담이나 차량 가격 인상으로 충분히 대응할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신한금융투자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원·달러 환율이 10% 상승할 때 컴퓨터·전자·운송(자동차 포함) 업종의 마진율은 3.3%p 상승하고 화학 업종도 1.5%p 상승한다고 분석했다.
달러지수선물을 추종하는 ETF(상장지수펀드)와 달러 환매조건부채권(RP) 투자에도 투자자들의 수요가 집중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미국 달러선물 지수를 추종하는 ETF 중 가장 거래가 활발한 삼성자산운용의 ETF가 최근 3개월 10.46%의 수익률을 보였다. 또 다른 상품인 키움자산운용의 ETF도 같은 기간 10.49% 올랐다.
추종지수의 일일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하는 KODEX, 타이거(TIGER) 미국달러선물레버리지 ETF의 3개월 수익률 역시 각각 21.21%, 20.89%를 기록했다. 이 기간 코스피 지수가 5.68%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우수한 성과다. 달러 단기채권 투자 수익률도 준수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7.11%의 3개월 수익률을 보였다.
다만, 전 세계 경제 침체가 두드러질 수 있는 만큼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는 보수적인 목소리도 있다.
이재만 하나증권 리서치센터 글로벌 투자분석팀장은 “킹달러 시대에 수출주 수혜가 기대되지만, 고환율, 고금리, 고유가 등 전체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투자 환경이 매우 좋지 않아 투자를 쉬고 관망하는 보수적인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정연우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세계 경기 둔화 우려로 내년에 시장 금리가 내려갈 수 있어 미국 국채 투자가 유망하지만, 신흥국 기초여건(펀더멘털) 악화와 기업 실적 둔화가 예상되는 만큼 신흥국 주식 투자는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