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등의 거래 조건을 짬짜미했다는 혐의를 두고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은행들은 공정위의 지적에 잘 못을 인정한 듯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속사정을 들어보면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는 푸념이 나온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공정위는 전날 KB국민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의 담합 행위에 대한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발송했다. 심사보고서에는 은행이 개인과 기업고객 담보대출을 취급하면서 거래조건을 담합해 부당 이득을 취득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으로 물건별 담보인정비율(LTV)이나 부동산담보회수율 등 대출에 필요한 세부 정보들을 공유하면서 고객들에게 지나치게 유리한 대출 조건이 설정되지 않도록 담합했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공정위의 지적에 일체의 공식적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공식적 입장은 없다”고 토로했다. 잘못을 인정하는 듯한 모습이지만 속사정을 전해 들어보면 억울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익명의 금융권 관계자는 “LTV는 사실상 당국에서 정해주는 것으로 LTV에 따라 차주의 대출 금리가 바뀌지 않는다”며 “금리는 고객 신용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다른 익명의 관계자는 “LTV 보다는 부동산담보회수율이 문제가 된 것 같다”며 “감정평가 대비 낙찰률에 따라 손실률이 결정되고 이것이 금리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반영하는 은행이 있고, 반영하지 않는 은행이 있어 담합이 이뤄질 수 없고, 미치는 영향도 0.01%~0.02%p 수준으로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은행권이 공식적인 해명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이번 조사가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이번 조사는 지난해 2월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 고금리로 인해 국민들 고통이 크다”며 과점 체제의 폐해를 줄이라고 지시한 뒤 이뤄졌다.
공정위는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KB국민·신한·하나·우리·IBK기업·NH농협 등 6대 은행에 대한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지난해 6월에는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에 대한 추가 현장 조사도 진행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조사 결과를 두고 지난 2012년 5대 은행과 SC제일은행의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조사와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는 당시 약 4년에 걸친 조사·심의를 통해 은행권의 묵시적 담합을 입증하려 했지만 결국 무혐의로 종결했다.
익명의 금융권 관계자는 “대통령의 지시로 금리담합 조사에 나선 공정위가 ‘혐의 없다’는 결과를 내놓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그래서 금리담합 대신 거래조건 담합을 문제 삼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2012년 CD 담합 조사와 같이 수년간 조사 끝에 무혐의 처리될 가능성이 현재는 농후하지만 개별 은행들이 해명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아직 은행권이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공정위가 은행 담합을 입증한 사례도 있다”며 “은행권의 수출환어음 매입 수수료나 뱅커스 유산스 인수수수료 등과 관련해 공정위의 담합 처분이 대법원에서 인정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