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관련해 국내외 전문가들이 모여 밸류업 방안을 논의했다. 한국 보다 먼저 기업 밸류업에 나선 일본은 광범위한 구조적 개혁과 인센티브를 주된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한국의 경우 기업들의 가치 개선 노력과 함께 투자자 대상 세제 지원 혜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28일 금융투자협회는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 서울에서 ‘자본시장 밸류업 국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관련해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일본 성공사례와 국내외 전문가들의 제언을 들어보기 위해 마련됐다.
서유석 금투협회장은 “자본시장 밸류업은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음으로써 저성장, 저출생, 고령화 시대의 돌파구가 될 수 있는 경제 선순환 정책”이라며 “협회와 금융투자업계도 자본시장 밸류업을 이뤄내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日 금융당국, ‘새로운 자본주의’ 경제 정책…“인센티브·구조적 개혁”
세미나 기조발표는 호리모토 요시오(Yoshio Horimoto) 일본금융청 국장의 ‘일본 새로운 자본주의 정책의 주요 내용과 성과’를 시작으로 진행됐다.
지난 2021년 10월 출범한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새로운 자본주의’라는 경제 정책을 공개하고 이듬해 6월 구체적인 시행계획을 내놨다. 이후 일본 증시의 대표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는 지난 3월 4만888.43으로 34년 전 버블경제 당시 기록을 뛰어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새로운 자본주의 정책은 산업과 금융, 노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경제 개혁을 뜻한다. 새로운 자본주의 정책이라는 큰 틀 아래서 밸류업 정책들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일본금융청 측 설명이다.
호리모토 국장은 “기시다 내각 출범 이후 닛케이225는 2만선에서 상승과 하락을 거듭하다 올해 신(新) 소액투자 비과세제도(NISA)를 시행하면서 개인투자자에 대해서는 일본 주식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게 됐다”며 “감세 대책 이후 해외 투자자들의 매수세도 지난 2월부터 급속히 올라갔다. 불과 3개월가량 기간 동안 일본 닛케이225는 3만2000대에서 4만선까지 상승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특히 호리모토 국장은 일본 내 가계자산을 자본시장으로 유입시키기 위한 광범위한 구조적 개혁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버블경제 이후 투자자들이 투자 결실을 보지 못한 영향에 그간 일본 가계의 금융자산은 예·적금 등에 편중됐다. 일본 정부는 편중된 가계 금융자산을 유가증권 등 금융투자상품으로 돌리는 ‘자산운용입국(立國) 실현’ 정책을 수립해 ‘투자 사슬(investment chain)’에 속하는 가계, 기업, 금융사 등 각 주체에 행동 변화와 개혁을 촉구한 것이다.
호리모토 국장은 “(일본) 국민들이 가급적 많이 투자자로 변화해 주주로서 성장의 과실을 폭넓게 향유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면서 “이 계획에는 기업 지배구조 개혁도 포함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기업 지배구조 개혁의) 최종 목적은 투자자와 경영자의 의사소통을 더 충실히 만드는 것”이라며 “투자자들과 좋은 전략을 소통한 기업들은 살아남고 그러지 못한 기업은 철수하는 체제를 만드는 게 정부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韓 밸류업 “기업 성장이 가장 중요해”…세제 인센티브도 동반
일본 금융당국의 밸류업 관련 경제 정책 발표 이후 전문가들은 한국 자본시장 밸류업 방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두 번째 기조발표를 맡은 전은조 맥킨지앤컴퍼니(McKinsey&Company) 시니어파트너는 “한국 기업들의 저평가는 정량적 분석 결과 실증적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수익성 지표 등 재무적 저성과와 크게 관련됐다”고 강조했다.
국내 자본시장의 고질적 문제점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서는 기업들의 성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전 파트너의 주장이다. 그는 “한국이라서 받는 구조적인 디스카운트보다는 본원적으로 기업 가치가 부족하다”며 “기업이 이익지표와 정성적 지표 개선에 최우선으로 노력하고 자본효율성을 제고하는 게 기본이다”고 부연했다.
여기에 밸류업의 성과를 위해서는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세금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의겨도 제시됐다.
김지산 키움증권 전략기획부문장은 국내 증시 밸류업 여부를 위한 4가지 제언으로 △투자자에 대한 인센티브 도입 확대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접근성 제고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 내용 단순화 △증권사의 기업금융(IB) 역할 강화 등을 제시했다.
김 부문장은 “사실 주식시장에서 기대하는 배당 소득 분리과세나 자사주 소각분에 대한 법인세 혜택 등 세제 인센티브는 정치적 합의와 세제 개편이 필요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바라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면서 “이에 앞서서 투자자에 대한 인센티브 도입을 제안한다”고 했다.
그는 “예를 들어 개인 투자자가 밸류업 장기 투자 펀드에 가입할 경우, 소득공제 혜택이나 종합자산관리계좌(ISA) 계좌 한도 확대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비과세 장기 주식형 펀드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언급했다.
박훈 서울시립대학교 교수는 “자본시장 밸류업 자체가 필수적인 것이라면, 세제 지원은 인센티브 방식으로 해야 한다”며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주주의 필요경비로 인정하는 차원에서 종합소득세에서 예외 시키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후 대주주와 소액 주주의 이해충돌을 완화하는 방향에서 상속세를 논의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금융투자협회는 오늘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과 업계 의견수렴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협회와 금투업계가 자본시장 밸류업을 위해 기여할 수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나갈 예정이다.
이창희 기자 windo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