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 건설사들이 중대재해 사고 예방을 위해 안전비용 예산을 매년 확대하고 있지만 연초부터 안전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안전 관련 투자를 2년 만에 3배 가까이 증액했지만 사고 예방에 실패한 모습이다. 안전 문화의 현장 정착과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연초부터 건설업계에 대형 안전사고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월 서울세종고속도로 천안∼안성 구간 교량 붕괴를 시작으로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아파트, 제기동 재개발사업지 붕괴에 이어 경기 광명시 일직동 신안산선 공사 현장에서도 붕괴사고가 발생했다.
대형 안전사고는 안전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10대 건설사에서 발생해 더욱 충격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올 한 해 세 번의 중대재해 사고를 냈다. 충남 아산 오피스텔 공사현장과 서울세종고속도로 안성 현장, 경기 평택 신축 아파 공사 현장 등이다. 3건의 사고로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어 현대건설,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 중인 공사 현장에서도 사망사고가 잇따랐다. 최근에는 포스코이앤씨가 시공 중인 지하터널 공사장 붕괴 사고로 1명이 실종된 바 있다.
대형 건설사들은 잇따르는 중대재해 사고를 막기 위해 안전 관련 예산을 급격히 늘려왔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안전보건분야 투자를 2년 만에 3배 가까이 증액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449억원이던 안전보건 투자비는 2023년 1189억원까지 늘었다. 안전설비, 안전보호구, 안전 교육 훈련, 현장점검 및 예방 등을 모두 강화했다.
현대건설도 안전경영비용 2021년 1349억원에서 2023년 1706억원으로 확대했다. 이는 2023년 영업이익 7854억원의 21.7%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대우건설은 2022년도 기준 본사 22억6000만원, 현장 1226억9000만원이던 안전보건 예산을 2023년 본사 46억9000만원, 현장 1447억8000만원으로 확대한 바 있다. 대우건설은 2023년 영업이익(6625억원)의 22.5%를 안전보건 비용으로 투자했다. 중대재해 사고 발생은 프로젝트 지연 또는 중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국 공사 비용을 상승시키고 수익성을 감소로 연결된다.
심지어 협회 차원에서도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한건설협회는 잇따른 인명 사고를 막기 위해 사고 예방 릴레이 캠페인에 나섰다. 협회는 이날부터 5월23일까지 총 6주간 추락 사고 예방과 안전 문화 확산을 위한 릴레이 캠페인을 진행한다. 이번 캠페인에는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대우건설, 지에스건설, 에스케이에코플랜트, 한화 등이 참여한다. 각 업체 CEO가 매주 차례대로 건설 현장을 방문해 현장 근로자들과 소통하며 안전 점검을 시행할 예정이다.
대형 건설사들의 안전 비용 확대와 문화 확산 노력에도 사고가 줄지 않는 이유는 현장 정착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이후 업계에서도 사망사고를 통한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안전 관리를 확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비용 확대에도 모든 현장과 개개인 근로자를 관리하는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안전 장비가 마련돼도 인식 부족 등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잦다”고 설명했다.
현장과 원청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재희 전국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시공사들이 보통 산재사고에 대해 노동자 임의로 작업하다 생긴 것이라고 하는데 현장에서는 이유가 있다”며 “안전을 통제하는 방향보다는 현장 소통을 통해 안전 문화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 노동자들이 작업 중지를 할 경우 공사비나 공기에 대한 원청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원청에서 작업중지권 사용 등을 보장하며 안전에 관심을 많이 가질 경우 현장 안전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건설사들은 처벌 중심의 법이 아닌 실질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실제 안전관리에 대한 예방적 조치보다는 사고 후 책임을 묻는 데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처벌만으로 안전의식을 높이고 현장에서 실질적인 개선을 유도하긴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제재적인 조치보단 소규모 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안전관리 지원책과 교육 프로그램 마련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건설사고 감축을 위해 사망사고 발생 건설사 명단을 공개하기로 했다. 또, 비계·지붕·채광창 등 추락 취약작업의 사고 예방을 위해 설계 기준과 표준시방서 등 국가건설기준 등을 개선키로 했다. 시공 과정의 안전성 확보 여부 확인을 위해 공공공사에만 적용 중인 설계 안전성 검토를 민간공사로까지 확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