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시스코 고야의 연작 판화 <전쟁의 참상> 중 제22번 ‘더욱이’에서 참극의 무한한 반복을 경고했다면, 제26번 ‘차마 볼 수 없다 No se puede mirar’는 그 비극적인 현장을 목격하는 인간의 시각적, 심리적 한계를 다룬 작품이다. 고야의 판화는 처음 접했을 때나 지금이나 몹시 충격적이다. 인간이 이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싶다.
원제 ‘볼 수 없다’, 혹은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다’는 처절한 탄식을 담고 있다. <1808년 5월 3일의 학살>과 매우 유사한 서사적 구도를 공유하면서도, 판화 특유의 압축된 연출로 극도의 공포를 자아낸다.
가장자리에는 학살을 집행하는 프랑스 군인들의 총구와 대검 끝만 밀고 들어와 있다. 군인들의 몸이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는 익명의 총구이다. 이 극적인 연출은 가해자를 인간이 아닌 '무자비하게 작동하는 살인 기계'로 만든다.
죽음을 직면한 스페인 민중들이 동굴 같은 어두운 공간에 갇혀 있다. 고야는 빛을 희생자들의 절망적인 몸짓에 집중시켰다. 작품의 핵심은 인물들의 포즈에 있다. 한 남성은 무릎을 꿇은 채 두 손 모아 애원하고, 그 뒤의 인물들은 다가올 총탄과 눈앞의 참상을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가리거나 고개를 돌리고 있다.
고야는 거친 에칭의 선과 아쿠아틴트의 짙은 음영을 통해 폐쇄 공포적인 분위기를 완성했다. 희생자들을 감싸는 배경은 아쿠아틴트 기법으로 매우 어둡고 탁하게 칠해져 있다. 이 짙은 명암은 그들이 도망칠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갇혀 있음을 시각화 하여, 관람객에게도 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을 전달한다.
군인들의 총구와 대검의 선은 매우 차갑고 날카롭게 묘사된 반면, 희생자들의 옷과 신체는 거칠고 뭉개진 듯한 선으로 표현되었다. 이는 무기의 견고함과 인간 육체의 취약함을 시각적으로 대조하는 효과를 준다.
제목 ‘차마 볼 수 없다’는 일차적으로 그림 속 희생자들이 느끼는 공포를 뜻하지만, 동시에 이 판화를 보는 우리와 고야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꿇어앉아 손을 모은 남성의 모습은 종교적인 기도를 연상시키지만, 그 기도가 향하는 하늘은 칠흑 같은 아쿠아틴트의 어둠으로 막혀 있다. 고야는 이 비극의 현장에 신의 구원이나 자비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냉혹한 물리적 폭력만 존재함을 냉정하게 짚어낸다.
“나폴레옹 전쟁 이전에 전쟁은 용병끼리의 전쟁이었고, 일정한 규칙이 있는 직업으로서의 전쟁이었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징병제를 통해 국민군을 편성하자, 전쟁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적을 몰살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시민이나 국민으로서 평등한 권리와 의무가 인정되자, 비로소 몰살 전쟁이 가능해졌다.” 라고 홋타 요시에는 말한다.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Massacre in Korea, 1951>을 마네와 고야의 총살 장면과 나란히 놓고 보면, 세 화가가 ‘죽음의 순간’을 다루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권력과 폭력을 고발했다는 점이 드러난다. 1951년, 피카소는 한국전쟁의 참상을 담아낸다.
<한국에서의 학살>에서 그는 구체적인 장소나 인물을 그리지 않았다. 대신 왜곡된 인체와 상징적 구도로, 여성과 아이들이 무방비 상태로 군인 앞에 서 있는 모습을 그렸다.
피카소의 붓은 전쟁의 잔혹성과 무고한 희생을 드러내며, “전쟁은 인간성을 파괴한다”는 보편적 메시지를 던진다.
고야는 개인의 절규를, 마네는 권력의 책임을, 피카소는 전쟁의 보편적 비극을 강조한다. 서로 다른 시대와 방식이지만, 세 작품은 모두 예술이 권력과 폭력에 맞서는 목소리라는 점에서 하나로 연결된다.
이 작품은 2021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피카소 탄생 140 주년 특별전>을 통해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다. 70년 만에 국내에 반입된 이 대작은 피카소의 3대 반전 예술에 속한다.

막시밀리안이 처형된 후 프랑스 언론들은 공포에 질려 사건을 보도했다. 이에 마네는 거대한 캔버스를 주문하고 5점 중 첫 번째 작품을 작업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보도가 나오자 마네는 새로운 디테일을 선택적으로 반영하여 그림을 수정하고 새로운 세부사항을 추가했다.
솜브레로(sombrero)와 플레어 나팔바지를 입은 보스턴의 유화스케치는 멕시코 군인을 낭만적인 차로(charro), 시골에서 온 기마병으로 묘사했던 마네의 초기 시각을 보여준다. 그들이 실제로 프랑스식 제복을 입은 것을 알게 되자 마네는 녹슨 갈색 의상을 덮어 칠했다.
그의 자유로운 붓놀림, 얼굴 없는 희생자들, 그리고 연기 구름은 처형의 즉각성과 폭력성뿐만 아니라 소식의 불확실성도 불러일으킨다.


그림 속 총살 부대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청색 제복과 정렬된 자세로 묘사된다. 이는 개인의 감정이 사라진 ‘행정적 죽음’을 보여주며, 국가 폭력이 어떻게 비인격적 절차로 변하는지를 강조한다.

보스턴의 유화스케치에서는 멕시코군의 옷차림이지만, 만하임 최종본에서는 프랑스군과 같은 제복을 입고 있다.

대열 뒤에서 확인사살을 준비하는 인물은 나폴레옹 3세의 얼굴을 닮아 있다.

이 작품은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최종본이다. 그는 프랑스가 멕시코 황제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며, 국가 폭력과 권력의 냉혹함을 고발했다.
대열 뒤에서 빨간 모자를 쓰고 확인사살을 준비하는 인물은 나폴레옹 3세의 얼굴을 닮아 있다. 마네는 왼쪽 하단 구석에 서명과 날짜를 남겼는데, 작품이 완성된 1868~1869년이 아닌 막시밀리안이 처형된 날짜인 1867년을 적어 넣었다.

구스타브 쿠르베의 <화가의 작업실>에는 왼쪽 제일 앞에 헌팅 캡을 쓴 채 사냥개를 데리고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밀렵꾼이 등장한다. 쿠르베는 열렬한 공화주의자이자 사회주의 성향의 예술가였다. 그는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삼촌처럼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른 것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다.
따라서 국민의 정부를 부당하게 찬탈했다는 의미에서 그를 정당한 사냥꾼이 아닌, 남의 땅에서 몰래 사냥하는 ‘밀렵꾼(Poacher)’의 형상으로 은밀하게 비판한 것이다.
마네는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을 파리에서 전시할 수 없었다. 국가 검열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여러 판본과 석판화를 제작하며, 예술을 통한 저항을 이어갔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시대의 목소리이지만, 모두 예술이 권력과 맞서는 순간을 보여준다. <끝>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