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얼굴을 환하게 비추던 컴퓨터 그래픽(CG)이 어색하지 않게 어울린다. 그는 등장과 동시에 잘생긴 외모,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꽃선비’라는 수식어도 따라붙었다. 이후 그는 사회초년생을 대변하는 청춘이 돼 안방극장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때로는 범죄소굴로 들어간 경찰이 돼 거친 액션도 보여줬다. 다양한 도전을 이어가는 배우 임시완의 이야기다.
임시완은 최근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트레이서’에서 탈세범 잡는 국세청 조사관 황동주 역을 맡았다. 자금 흐름을 추적하며 비리를 파헤치는 국세청 이야기. 그 안에서 황동주는 통쾌하게 악을 응징했다. 최근 화상으로 만난 그는 안티 히어로 같았다는 말에 “딱 맞는 표현”이라며 반색했다. 황동주는, 임시완의 연기 방향성과도 맞닿은 인물이다.
“시놉시스를 봤을 때부터 안티 히어로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트레이서’는 정의로운 인물이 정의를 구현하는 드라마가 아니에요. 황동주는 다면적인 인물이에요. 다면성은 제가 인물을 표현하는 방향이기도 하죠. 모든 사람은 입체적인 존재잖아요. 캐릭터 특성이 다양하게 드러날수록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황동주의 여러 면을 보여주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어요.”
황동주는 영리하다. 때로는 교활해 보일 정도다. 악한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이죽대면서도 냉철한 눈빛을 보여준다.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하다. 임시완은 촬영 전날까지도 톤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다 얻은 결론이 지금의 황동주다. “어른이 어린아이와 진심으로 싸울 때면 수준이 더 낮아 보이잖아요. 그래서 황동주의 말투도 어린아이처럼 설정해봤어요. 말려드는 순간, 상대가 더 유치해 보이게요.” 그의 치밀한 계산으로 만들어진 황동주는 극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저는 캐릭터를 맡을 때마다 제가 가진 면과 그 인물의 유사점을 찾고 극대화하려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캐릭터와 저의 싱크로율이 높은 건 아니에요. 단지 저의 극히 일부를 부각했을 뿐이거든요. 황동주는 똑똑하고 패기 넘쳐요. 불의에 맞서고, 싸움에도 거침없죠. 몇 수 앞을 내다볼 정도로 지능적이에요. 그런 면을 더 살리기 위해 감독님과도 긴 시간 논의하곤 했어요. 제가 잘 해냈다고 100% 확신하진 못했지만, 괜찮다는 반응을 보며 조금씩 안도했어요.”
극 중 황동주는 속 시원한 장면을 도맡았다. 탈세자 집에 찾아가 망치로 벽을 깨부숴 숨겨둔 돈을 찾아내는 1회 엔딩 신은 ‘트레이서’의 초반 입소문을 견인했다. “그 장면 때문에 ‘트레이서’를 선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을 잇던 임시완은 “촬영하면서도 속이 후련했다”며 씩 웃었다. 악을 통쾌하게 응징하는 모습에서 대리만족도 느꼈단다. 반응 역시 폭발적이었다. 해당 장면이 담긴 ‘트레이서’ 1회는 순간 최고 시청률 9.7%까지 치솟았다(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고민하며 표현한 캐릭터가 좋은 평가를 얻은 만큼 뿌듯함도 크다. 10년 전 MBC ‘해를 품은 달’에서 허염 아역을 맡아 연기에 발을 들인 임시완이다. 지난날을 회상하던 그는 “지금도 그때와 마음가짐이 같다”고 말했다.
“‘해를 품은 달’은 제 인생의 극적인 전환점이에요. 하지만 그때만 해도 저는 연기 문외한이었죠. 주연, 조연 구분도 못했고, 각자 역할들이 가져야 하는 미덕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당시 감독님께서 ‘너희는 아역배우여도 모두가 중요한 주연인 만큼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저는 6부까지만 나오면서도 제가 주연이라 생각했어요. 하하. 그때도, 지금도 달라진 건 없어요. 언제나 같은 책임감을 갖고 연기에 임하거든요.”
연기에 매진하면서도 가수의 끈은 놓지 않았다. 임시완은 ‘트레이서’ OST에 참여하고, 팬미팅에서도 무대를 선보이는 등 음악과 연결고리를 이어가고 있다. “가수로 데뷔한 건 인생을 통틀어 정말 잘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그는 “덕분에 이렇게나 다채롭게 잘 살고 있다”며 환히 웃었다. 현재 그를 움직이는 동력은 연기다. 그는 연기 활동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면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연구한다. 데뷔 13년 차, 연기 10년 차. 적지 않은 경력에도 임시완은 자신의 성장 가능성을 봐 달라고 말한다.
“연기는 재미있어야 오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창작의 고통을 느끼는 순간 심리적으로 고달파지는 작업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늘 즐기려 해요. 실생활에서도 ‘이건 연기에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까?’를 생각하곤 해요. 연기가 정말 즐거워요.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어요. 지쳤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새롭게 도전할 때마다 성취감이 커요. 그래서 저는, 제 노선을 하나로 정의하고 싶진 않아요. 여전히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갖고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후회 없이, 하고 싶은 작품을 해나갈 거예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