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렬왕후는 부친이 직산현감일 때 직산에서 태어나, 1638년 15세 나이로 인조의 계비가 된 인물이다. 유일한 천안출신 왕비인 셈이다.
28일 오후 6시 해가 질 무렵, 직산현관아를 지키는 정령들이 나타나 천안 관련 역사인물들을 꼽았다. 왕건, 박문수, 홍대용, 이동녕, 유관순…. 그런데 한 정령이 “직산에서 태어난 장렬왕후를 아는가?” 외치면서 왕후의 존재를 알렸다.
자의대비, 조대비로 불린 장렬왕후는 효종(1619~1659)이 죽으면서 원치 않게 정쟁의 주인공이 됐다. 인조가 장렬왕후와 재혼해 효종은 그의 아들이 됐다. “아들이 죽었을 때 어머니는 몇 년간 상복을 입어야 하는가.” 이 문제로 서인-남인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15년 후 효종의 부인, 즉 장렬왕후 며느리가 죽어 또 상복 기간을 두고 두 정파가 대립했다.
이런 비운의 주인공 이야기를 아마추어 연기자 10여 명이 재미있게 풀어갔다. 연기자는 대부분 40~50대 여성들로 “처음 하는 연기로 볼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는 관객들 찬사를 받았다.
스토리텔링도 무난했다. 당시 백성들 최대 어려움인 지역 특산물 징수 문제를 슬쩍 끼워 넣어 역사성을 높였다. 당시 농민에게 “해산물을 내놔라”하는 등 폐해가 극심했다. 극 중에서 장렬왕후가 효종에게 해결책으로 대동법 시행을 적극 권유했다. 실제로 1651년 8월 효종은 영의정 김육의 건의로 충청도에 대동법을 확대했지만, 장렬왕후 역할은 확인할 수 없다.
45분간 진행된 마당극이 끝나고 직산현관아는 어둠 속에 묻혔다. 출연자들은 마당극 판을 열어준 이완희 이사장과 자신들을 연기자로 만든 성장순 총감독을 불러내 꽃다발을 안겼다. 이어 관객까지 합세한 춤판으로 마당극은 마무리됐다.
천안=조한필 기자 chohp1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