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행동주의펀드의 주주제안 제출이 본격화되고 있다. 올해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이후 상장 기업의 주주환원정책에 편승해 예년보다 더욱 활발한 모양새다. 다만 주주제안 요구에 반발하며 주총 표 대결이 전망되는 기업들도 다수 존재해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14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결산 상장법인 2614개사 가운데 지난 12일부터 오는 15일까지 삼성물산을 포함한 31개사가 정기 주총에 나선다. 이어 18~22일 사이에는 삼성전자와 우리금융지주, 현대모비스 등 371개사가 진행한다.
올해 주총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행동주의펀드의 주주제안이다. 이들의 움직임은 점차 확대되는 상황이다. 한국ESG기준원에 따르면 지난해 주주제안 기업은 50개사, 총 안건은 195건으로 직전 2년 평균보다 각각 41%, 26%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행동주의펀드 주주제안에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기업가치 제고 노력이 기관투자자의 투자 판단에 활용될 수 있도록 스튜어드십 코드에 반영하기로 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의 의결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자율지침이다.
투자업계에서도 행동주의펀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연구원은 “비정상의 정상화 관점에서 오너 중심 지배구조, 낮은 밸류에이션과 주주환원율 등을 개선하기 위한 주주행동주의 캠페인은 지속될 공산이 크다”며 “실제 국내 증시에 상장된 우선주의 높은 괴리율은 국내 기업의 불투명한 거버넌스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행동주의 제안은…‘주주환원·기업 지배구조 개선’ 중점
현재 행동주의펀드의 타깃이 된 상장기업은 △금호석유화학 △JB금융지주 △KT&G △삼성물산 등이다. 다올투자증권의 경우 2대 주주인 김기수 프레스토투자자문 대표가 공개 주주 서한을 통해 주주제안에 적극 나서는 등 행동주의 행보를 시작했다.
이들 기업에 대한 주주제안은 대부분 사외이사 후보 추천 및 증원, 자사주 매입·소각, 배당금 확대 등 주주환원책과 지배구조 개선 요구 등으로 구성됐다.
외국계 행동주의펀드와 함께하는 안다자산운용은 삼성물산에 보통주 주당 4500원·우선주 주당 4550원의 현금배당과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제출했다. 배당액의 경우 삼성물산이 지난 1월 제안한 금액보다 75% 이상 증액된 규모다.
삼성물산 측은 이러한 주주환원 확대 요구가 경영상 부담이 되는 규모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 루이스(Glass Lewis)가 행동주의펀드의 주주제안에 찬성할 것을 권고하면서 주총 결과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JB금융지주 주총에서 신규 사외이사 선임을 두고 표 대결을 펼칠 전망이다. 얼라인은 JB금융의 기타비상무로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을 추천했다. 아울러 다수 사외이사 선임 안건 통과를 위한 의결권 위임 요구를 개시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적법한 주주 제안을 통해 회사에 더 도움이 되는 후보를 주주총회에서 선출하자는 것”이라며 “이사회의 임원추천권이 남용되지 않도록 주주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JB금융 측이 얼라인파트너스의 주주제안은 과도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갈등은 깊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플래시라이트캐피탈피트너스(FCP)는 오는 28일 개최되는 KT&G 주총에서 기업은행과 문제의식을 같이했다. FCP는 기업은행이 추천한 손동환 사외이사 후보에 대해 KT&G의 거버넌스를 바로 잡을 독립적인 인물이라 평가했다.
앞서 기업은행은 방경만 KT&G 사장 후보와 임민규 사외이사 후보 선임에 반대하면서 손 사외이사 후보 선임에 찬성해달라고 주주들에게 요청했다. 그러면서 방 사장 후보가 수석부사장으로 선임된 이후 KT&G의 영업이익이 20% 이상 줄었다고 지적했다.
이상현 FCP 대표는 “중요한 것은 주주를 위한 CCTV 역할을 할 수 있는 진정한 사외이사가 KT&G 이사회에 들어가는 것”이라며 “표 분산을 막고, 이번 기회에 주주의 식견을 갖는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반드시 뽑히도록 전력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기업은행 지지 이후 KT&G 사외이사 후보에 사퇴했다.
의결권 자문사 반대 부딪힌 차파트너스…다올투자證 ‘경영권 분쟁 소지’
박철완 전 금호석유화학 상무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은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금호석유화학과 주총을 앞두고 정면충돌을 벌이고 있다. 차파트너스 측은 김경호 KB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을 금호석유화학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이와 함께 주주총회 결의만으로도 자사주를 소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정관 변경과 자사주 전량 소각도 요구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이에 향후 3년간 보유한 자사주의 절반에 해당하는 보통주 262만주를 분할 소각할 방침이다. 더불어 6개월간 자기주식 500억원을 취득한 후 전량 소각할 예정이다. 이는 차파트너스의 주주제안과 금융당국이 독려한 밸류업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주주환원정책 강화 목적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차파트너스는 자사주 절반 소각 방침에 대해 "주주제안에 대응하기 위한 ‘궁여지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금호석화가 발행주식총수의 9%가 넘는 나머지 50% 자사주를 남겨두는 결정을 한 것은 우호적인 제3자에 대한 처분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차파트너스는 자사주 전량 소각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으나, 제안 수용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의결권 자문사인 ISS에 이어 글래스 루이스도 차파트너스의 주주제안에 반대하면서 금호석유화학의 손을 들어줬다.
글래스 루이스는 “이사회가 향후 3년간 자사주의 50%를 소각할 계획을 발표해 주주제안자가 제기한 우려와 잠재적 위험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며 주주제안에 반대표를 행사할 것을 권고했다.
다올투자증권은 2대 주주인 김기수 프레스토자문 대표가 행동주의를 선언하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해 다올투자증권 주식 보유 목적을 ‘일반 투자’에서 ‘경영권 영향’으로 변경하고 경영 참여를 선언했다.
김 대표는 △권고적 주주제안 신설 내용의 정관 변경 △차등적 현금배당 △이사의 보수와 퇴직금 관련 주주총회 보수심의제 신설 △최대주주가 참여하는 유상증자에 따른 자본확충 △자회사 매각에 대한 주총 보고 등 다수 안건을 제안했다. 특히 권고적 주주제안은 경영진 견제를 위한 안건으로 주주들의 경영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이다. 이에 대해 다올투자증권은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공시로 반대 입장을 내놨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주주총회는 과거와 다를 것으로 예상한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주주환원에 대한 시장 기대치 충족 여부, 주주행동주의 부상, 배당기준일 변경 이벤트 등 과거와 다른 주총 분위기로 다가올 것”이라며 “이번 주총 시즌은 주주제안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창희 기자 windo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