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1일 (5)
폭염에도 탑골공원 찾는 노인들…“외로움이 더 힘들어” [무(無),더위쉼터②]

폭염에도 탑골공원 찾는 노인들…“외로움이 더 힘들어” [무(無),더위쉼터②]

폭염경보에도 이른 아침부터 북적…“갈 데 없고 친구 만나러”
쉼터 몰라 못 가거나 이용 부담…전문가 “관계 맺을 공간 늘려야”

승인 2026-08-05 06:00:05 수정 2026-08-05 10: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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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북문 인근에서 노인들이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아리수 생수를 받고 있다. 서지영 기자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북문 인근에서 노인들이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아리수 생수를 받고 있다. 서지영 기자
서울 곳곳에 무더위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폭염 속에서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찾는 노인들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더위를 피해 실내에 머무르기보다 공원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4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폭염에 취약한 노인들 건강과 안전을 위해 다음달 30일까지 경로당과 복지관 등 3033곳을 무더위쉼터로 운영한다. 이 가운데 종로구에는 특정 계층 전용 시설과 야외시설을 뺀 무더위쉼터가 60여곳 마련돼 있다.

그러나 다수의 노인들은 무더위쉼터가 아닌 탑골공원을 방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 3일 오전 찾은 탑골공원은 이른 시간부터 개장을 기다리는 노인들로 북적였다. 오전 8시55분 기온은 31도, 체감온도는 32도였지만 공원 문이 열리자 정자와 나무 그늘은 금세 사람들로 채워졌다. 65여명이던 공원 이용객은 1시간여 만에 85명 안팎으로 늘었다. 노인들은 그늘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공원을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폭염에도 무더위쉼터 대신 탑골공원을 찾는 이유를 묻자 상당수 노인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경기 양주에서 지하철을 타고 1시간10분 걸려 온 임창균(69·남)씨는 오전 10시에 열리는 부채 글씨 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공원을 방문했다. 임씨는 “여기 오면 인사할 사람이 많다”며 “집 근처 복지관보다 이곳을 더 자주 찾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에서 지하철을 타고 왔다는 78세 남성은 “여기 오면 이야기할 사람도 많고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받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일주일에 3~4일 공원을 찾아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신 뒤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온 김모(69·여)씨는 일주일에 엿새 탑골공원을 찾는다. 김씨는 “아침 먹고 나와 있으면 시간이 금방 간다”며 “점심도 먹고 친구도 사귀고 싶어서 온다”고 이야기했다.

경기 안산에서 매일 공원을 찾는다는 황경만(90·남)씨는 “나이 먹고 갈 데가 없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똑같다”며 “집에 있으면 편할 것 같으냐. 움직여야 건강에도 좋고 나와 있으면 좀 낫다”고 털어놨다.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북문 인근에서 열린 서울노인복지센터 ‘부채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노인이 직접 만든 부채를 들어 보이고 있다. 서지영 기자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북문 인근에서 열린 서울노인복지센터 ‘부채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노인이 직접 만든 부채를 들어 보이고 있다. 서지영 기자
노인들이 무더위쉼터보다 탑골공원을 찾는 이유는 접근성과 자유로운 환경 때문이다. 탑골공원 인근 종로3가역에는 수도권 지하철 1·3·5호선이 모두 지난다. 65세 이상은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경기 평택과 용인에서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 주변 송해길 식당에서 한 끼를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점도 발길을 붙잡는다. 무엇보다 공원 안에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머물 수 있다.

서울노인복지센터 한 봉사자는 “탑골공원은 자유롭게 있을 수 있지만 센터 안에 들어가면 안내사항이나 규칙이 있어 구속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다만 서울 내에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쉼터의 존재를 모르는 노인도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에서 20년째 매일 탑골공원을 찾는 권오윤(90·남)씨는 “무더위쉼터라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매일 이곳을 찾는 이모(80·여)씨도 “여기 무더위쉼터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이씨는 집에 에어컨이 없어 선풍기만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무더위쉼터 안내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탑골공원 북문 복지정보센터 직원과 ‘탑골지킴이’ 봉사자들이 공원을 돌며 어르신들에게 가까운 쉼터를 안내하고 있다. 뉴스, 공익광고 등을 통해서도 홍보 중”이라며 “지하철을 활용한 안내 등도 검토해보겠다”고 전했다.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북문 인근 원각사 무료급식소 앞에서 노인들이 배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서지영 기자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북문 인근 원각사 무료급식소 앞에서 노인들이 배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서지영 기자
전문가들은 폭염에도 탑골공원을 찾는 노인들 사정을 이해하되, 개인마다 다른 방문 이유와 필요한 지원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몇 년간 만나온 사람들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된다”며 “다만 공원을 찾는 노인들을 모두 같은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다. 고독감이나 무료급식 이용 등 이유가 다양한 만큼 개별적인 욕구를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폭염 시기에는 쉼터 이용을 적극적으로 안내하고, 도움이 필요한 노인은 지역 복지체계와 연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노인들이 집 안에 고립돼 있고 외로우니 사람을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 것”이라며 “도시화 과정에서 이웃 관계와 공동체가 약해진 영향도 크다”고 진단했다. 이어 “복지관뿐 아니라 노인들이 취미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소규모 활동과 공간을 늘리고, 지역사회 안에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지영 기자 surge@kukinews.com
최희령 기자 bright@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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